후대에 위대한 예술가로 회자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이 특별히 내린 천재성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나간다. 그들의 천재성이야 물론 어디서나 튀게 마련이지만 관건은 수용여부이다. 즉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곤충채집·만들기 과제 등을 제출하면 무조건 상을 독차지하던 학생이 여기 있다. 한 눈에 봐도 차이가 확연할 정도의 놀라운 손재주를 지닌 아이였다.
50여년이 지나 그 학생은 천재성을 발휘해 전통공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김무언(63세) 작가.
그는 “나는 누구에게도 이걸 배운 적 없고 혼자 창작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궁핍했던 시절, 서울로 상경해 유명 양장점에서 재단일을 하면서도 여성고객들을 위해 자그마한 악세사리 등을 직접 만들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양장점 대표를 따라 강원도 탄광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광부 가족들 스스로 밥벌이라도 하자는 의미로 자활작업장을 만들었고 거기서 목각공예품을 만들었다. 뛰어난 예술적 기질을 지닌 김 작가는 목각공예 교사 곁에서 곁눈질만으로도 금새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고 나중에는 지도까지 맡아 했다. 그는 “누가 하는 걸 보면 곧잘 따라하곤 했어”라며 그 시절을 더듬어본다.
김 작가 작품의 주재료는 돌. 수집해 온 돌을 가만히 바라보면 돌마다 그 자연의 선 안에서 꿈틀대는 비구상적인 이미지가 눈에 선하다. 돌을 쪼개고 다듬으면서 그 이미지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
김 작가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작품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을 즐긴다”고 살짝 털어놨다.
이렇게 김 작가가 돌과 인연을 맺은 것은 포천철광으로 발령을 받으면서이다. 광산에서 특이한 돌이 많이 채굴되자 그의 영감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 돌들을 모아 선물용 공예품을 만들었고 그중 한 작품이 국전에 입선한다. 그 후 각종 대회에 입선한 작품만도 40여점이 넘는다.
김 작가는 그 작품들 대부분을 경제적 이유로 자신이 소지하고 있지 못함을 무척 아쉬워했다. 예술인의 삶은 배고픈 생활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작품에 전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후계자를 키워 전승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쉽게 나서는 사람도 없고 정부 정책 등 제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선뜻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여유가 된다면 지역순회전시회나 얼마 전 개관한 반월아트홀에서 개인전을 한 번 갖고 싶은데 글쎄…”
감히 천재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졌다고 소개하고 싶은 김 작가의 마지막 말은 예술을 대하는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 같아 그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이 못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