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국회의원 선거(1948년 5월 10일)에는 서정희의원(포천시 설운동. 상업. 소학교졸. 독립운동. 한국민주당)이 당선되었으며 제2대에는 20명이나 입후보하여 그중 윤성순의원(포천시 신읍동. 회사원. 아메리칸대학원 철학박사. 광공국장. 무소속)이 당선되었고 3대에도 10여명이 입후보했고 이 중 윤성순의원이 재선되었으며 자유당 소속이었고 당시 55세였다. 제4대의원 선거에는 자유당의 윤성순박사가 자유당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차점자인 김영구(포천시 신읍동 202번지. 상업. 동경제대 정치학과 졸. 고대 법대 교수)씨가 민주당 공천자였는데 불과 4,119표차로 앞서 당선되었는데 윤성순박사는 59세였으며 김영구교수는 37세였다. 제5대에는 4.19혁명으로 참의원과 민의원을 선거하였는데 민의원에는 김영구교수가 민주당으로 당선되었으며 윤성순박사는 참의원으로 경기도에 입후보하였으나 7번째로 득표하여 6명 당선 밑에 고배를 마셨다. 제6대에는 선거구가 연천·가평군과 함께 형성되어 가평 출신의 홍익표(민주당. 53세. 경성제대 법과 졸. 2, 4, 5대 민의원)씨에게 포천출신 김용채(민주공화당 공천. 31세. 고대 경영학과 1년 수료. 육군 소령)씨가 3,446표차로 낙선되었다. 제7대에는 포천·연천·가평을 포함한 선거구로 민주공화당 공천의 오치성(대졸)씨가 당선되었다. 제8대에는 오치성(45. 6, 7대의원, 공화당 사무총장)의원이 당선되었으며 제9대에는 포천·연천·가평·양평을 선거구로 하는 경기도 8선거구에서 김용채(41세. 제7대 의원. 민주공화당 공천)의원이 천명기(36세. 서울법대 졸. 신민당 공천)씨와 동반 무투표 당선되었다. 제10대에는 제8선거구(포천·연천·가평·양평)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의 오치성의원(53세. 6, 7대의원)이 천명기(41세. 신민당 공천. 8, 9대의원)의원과 동반 당선되었고 11대 선거에는 경기도 제12선거구(가평·연천·포천)에서 이한동(47세. 민주정의당 공천. 서울법대 졸. 부장검사, 지법판사)의원이 가평 출신 홍성표(45세. 민주한국당.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씨와 동반 당선되었으며 12대에는 이한동의원이 재선되었다. 제13대에는 포천·연천 통합 선거구에서 이한동의원이 3선되었고 제14대에도 이한동의원이 4선되고 제15대에도 이한동의원이 5선되었으며 제16대에도 이한동의원이 6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대 국회의원 중에는 교통부장관을 지낸 분도 있고 내무부장관을 지낸 분도 있으며 건설교통부 장관을 역임한 분이 있는가 하면 내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분도 있다. 역대 국회의원들이 내 고향 포천의 발전과 세력 확장에 남다른 노력을 하여 전국 어느 고장보다도 앞서가는 고장으로 만드는데 총력을 경주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시대는 변하였다. 젊고 유능한 큰 재목들이 국회진출을 꿈꾸는 것도 포천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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