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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78) 윤성순 박사(尹珹淳 博士)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8일

“윤위원장님 말입니까? 아마 국회 등원하시는 의원님들 가운데 제일 부지런하고 성실하시다고들 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장님께서 ‘포천의 왕방산 황소 같으시다’ 별호를 지어 드렸지요.”
이 말은 국회 제 2, 3, 4대 포천출신 국회의원 윤성순 박사를 평한 당시 인기 주간지 『인물계(人物界)』 기자의 말의 한 도막이다.
다른 의원들은 ‘사자같다’고 평하기도 하고 자기의 명함도 못 읽는다던 혹평이 난무하던 시절 ‘포천의 왕방산 황소 윤성순 의원’이라는 인물평이 매우 흐뭇한 느낌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윤 박사님은 1898년(고종23) 신북면 계류리에서 출생하시어 1971년 신북면 고일리에 영면하시기까지 파란만장한 풍운아의 길을 사셨으며 포천을 대표하는 분이시기도 하였다.
제1회 포천공립보통학교(현 포천초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시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중고교의 전신), 경성공업고등학교(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 상해 삼육대학,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논문 : 기독교가 한국교육에 미친 영향) 학위를 받으셨다.
귀국후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전신) 교수로 계셨으며 ㈜대동광업 참사, 북선흑연광산 소장, 광복후 충남 상공국장, 학무국장, 내무국장, 상공부 광업국장을 역임하셨고 한국 최초의 광업사전인 『한국광업지』를 편찬하셨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1953년 2월 교통부장관, 제3대 국회의원(1954년 자유당 공천), 제4대 국회의원(1958년)에 당선, 의회에 계시는 동안 국회전원위원장(현 원내총무, 운영위원장) 상공분과, 국방분과, 외무분과 위원장을 역임하시기도 하였으며 UN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원외직분으로는 세계도덕재무장(MRI)한국본부장, 한국태권도협회장을 역임하셨으며 필리핀 세계도덕재무장 국제대회에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셨는데 의원직 후 홍익대학교 총장을 맡아 교육가로서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기도 하셨다.
평소 온후(溫厚)한 성품에다 인자한 말씨 그리고 늘 미소짓는 표정은 타인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임영신(상공장관, 중앙대 총장), 김활란(이대총장) 박사, 황학성 의원, 조병옥 박사, 신익희(국회의장) 의장님과 교유하고 절친하시었다.
특히 내 고향 포천의 수복 후 재건사업에 큰 역할을 하셨으며 포천의 얼굴이며 포천의 지성과 선비정신을 계승하려는 맥통의 귀골이셨다.
3.1운동에도 참여, 중국망명길 미국망명길에서도 기독교에 입문하시어 학문연구와 귀국후 광업잘전, 의회활동과 UN활동을 통한 국위선양과 내 고향을 빛내는 큰 인물로 포천 근대사의 큰 대들보였으며 기둥이셨던 점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 연락처 :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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