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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의 ˝이바구 저바구˝] 슬기로운 환자 생활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12일
 
박창진/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대표이사,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모든 불편 부당한 제약과 속박을 아무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는 무언의 약속이며 심지어 간단한 기호식품까지도 엄중하게 제약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모든 권리포기임을 알고 있다.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강제 퇴원이나 사법기관에 고발당한다는 내용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포기하고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 욕망이나 욕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누려 왔던 것들이 억제 받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욕구는 강해지고 틈만 나면 스멀스멀 올라오고 때로는 참지 못하여 몰래 일탈을 행하다가 적발되어 강력한 제지와 벌칙을 받게 되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뉘우침이나 양심의 가책보다는 불평불만이 극도에 차올라 쫓겨나거나 스스로 퇴원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병원 측의 규율이 너무 심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항변한다.

가끔은 환자들이 동맹 아닌 동맹을 맺어 병원측에 집단 항의 등을 하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통해 유입되는 간이 센 음식이나. 보신탕 같은 혐오식품 또는 지나친 음료 섭취 등을 제지당했을 때다. 사실 이 정도의 식‧음료는 적당 선에서 서로 타협이 가능하다 싶지만 병원측에서 융통성의 발휘 없이 병원 규율에 위배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지적하고 강제로 압수한다든지 퇴출시킬 때다. 하지만 간만에 동맹을 맺은 의기에도 아랑곳없이 결말은 언제나 병원 측의 뜻대로 결정된다. 그것이 싫으면 앞에 말 한대로 자퇴하거나 강퇴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방적인 횡포에도 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은 아파서다. 아픈대는 장사가 따로 없다. 응급실에 가보면 평소에 근엄하셨던 교장 선생님이나 천하장사 같은 몸매를 자랑하던 운동선수,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나 재벌총수나 요조숙녀나 모두 죽어가는 소리로 앓고 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사회적 권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엄살의 정도 또한 높다고 하니 혹시 응급실에 가게 되거들랑 눈여겨봐야겠다.

병원 생활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료함이다. 온종일 있어도 특별한 일은 없고 또한 만들 수도 없으며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지나친 무료함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기도 하니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잠깐 잠깐 잡담을 하다가 다른 재미를 찾는데 예전처럼 독서를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모두들 유튜브에 열중한다. 예전과 달리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열심히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곧 TV 시청에 매달린다. 그런데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은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지만 TV는 다르다. 우리 방에서는 두 사람이 리모컨을 양분하여 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선거철이 되어서 그런지 하루 종일 그와 관련된 방송만 본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는가 하면 여기저기 비슷한 류의 프로그램만 찾아서 보는데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듣기도 싫고 안 들을 수도 없고, 해서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미스 트롯인지 미스터 트롯인지만 보는데 어느 채널에서 어느 시간에 하는지 본 방송부터 재방송까지 달달 외워서는 하루 종일 계속 보고 있다. 정말 즐겁지 아니했다. 아리랑도 삼세번이라는데 하루 종일 “쿵자자 쿵작” 하고 듣다 보면 머릿속이 휑해지고 멍해진다. 해서 같은 방 환우들에게 회의를 하자고 요청하여 “TV시청 및 병실 생활에 대한 규칙”을 세웠다.

내용은 첫 번째, TV 시청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로 하되 특별한 경우 30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리고 네 사람이 돌아가며 각각 두 시간씩 채널 권을 갖되 볼거리가 다양해지는 오후 6시 이후에는 1시간씩의 권리를 갖게 했다. 그리고 나처럼 자기에게 부여된 시간에는 TV를 꺼 놓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TV 시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두 사람은 불편한 기색이 역역했지만 나는 병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강행하였다.
 
두 번째, 휴대 폰 통화는 급한 일이 아니면 9시 이후에는 서로 자제하기로 정했으며 벨 소리도 진동으로 하기로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환자들은 신경이 많이 쓰여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우리 방에는 환자들의 침대가 있는 곳에 형광등 불이 나란히 있고 화장실과 복도 쪽으로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낮이든 밤이든 불을 끄라고 한다. 가뜩이나 우중충한 병실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것은 환자의 기분을 다운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한 나는 밤 10시까지는 모든 불을 켜 놓고 10시 이후에는 침대 쪽은 끄고 복도 쪽만 놔두었다가 10시 30분 이후에는 작은 불조차 끄기로 하였다.
 
여기까지 규칙을 정해 놓으니 병실 생활이 한결 좋아졌다. 가끔은 병원 측 사람들이 왜 TV를 안 보느냐고 묻기도 하고 친절하게도 자신이 TV를 틀어주려고도 했지만 이내 우리 병실 규칙에 대해 듣고는 신기해하기도 하였다.

병원에서의 한낮은 무료함이 덜하다. 수시로 혈압, 혈당, 체온 등을 체크하러 들어오며 환자마다 각종 검사와 상담 면회 등이 이어지고 유튜브나 게임, 통화 등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잘 가는 편이다. 하지만 오후 5시 30분 저녁밥을 먹고 난 후 부터는 TV소리만 낭랑할 뿐 멈춰진 듯한 시간의 흐름에 다시금 무기력한 모습들이다. 해서 내가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었다. 

제목은 “남의 얘기 들어주기” 처음에는 “내 얘기 들려주기”라고 제목을 정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아픈 몸에 치료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에게 부담감이 많을 것 같아 가볍게 남의 얘기나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돌아가면서 해야 하므로 결국 남의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자신의 얘기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규칙은 이렇다. 아무런 주제와 상관없이 본인이 20분 이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첫 시작은 내가 하였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하자고 한 사람이 먼저 해야 뒤의 사람들이 감도 잡고 쫓아오기가 쉬울 것 같아서였다.

나는 3살 무렵 소아마비에 걸리고 암울했던 청년시절의 삶에 대한 고뇌와 세상 밖으로의 일탈 등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고 30대 초반 아내를 만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고 지금까지 한 길로만 주욱 살아온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듣는 내내 그들은 매우 진지하였고 흥미로워했으며 세상에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또 그걸 극복하려면 죽을 만큼 노력해도 어렵다는 것을 공감해주었고 자기들이 전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의 삶에 대한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 얘기가 끝난 뒤 질문을 받아서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결국 내 삶이 다 까발려 진 것이지만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아주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보통의 한국 남성에게 아무 얘기나 20분쯤 하라고 하면 대부분 막막해한다. 주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또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방법도 답답해하기 마찬가지다. 더구나 병원이라는 곳이 좀 무거운 분위기와 웬만하면 타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자신에 대해서도 내비치기 쉽지 않은 환경인데다가 이런 거 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아파서 치료하러 들어왔는데 생판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니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그래서 대부분 3분정도 버벅거리다가 난해한 표정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고비를 넘기면 술술 나머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기다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경청을 하되 눈짓이나 몸짓으로 재촉하지 아니하고 눈짓 몸짓 등으로 반응하며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중간 중간 질문을 통하여 그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우며 주제가 빗나가지 않도록 바로 잡아 주어 끝까지 완주하게 하는 것이다. 

때로 말문이 트인 사람의 경우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길게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끊지 않고 그냥 놓다둔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방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한 번 어려움을 겪고 헤쳐 나간 주인공은 쏟아지는 질문에 곧잘 답을 한다. 가끔은 이야기 중 부풀려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굳이 밝힐 일은 아니다. 토론회가 다 끝나면 10시 30분 정도가 되어 취침을 하기 딱 좋은 시간이 된다.

이야기의 내용은 주로 자신이 살아온 것이 주를 이루며 사업 실패나 성공, 가정사, 뜻하지 않는 사고, 우연히 찾아온 행운, 그리고 신변잡기 등에 국한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취미나 기후 위기 남북관계 등등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풀어보기도 했다. 나도 4가지 주제를 여섯 차례에 걸쳐 이야기 했는데 내 삶에 대한 간증, 사회복지강의, 대중가요론, 세계 미술의 역사 등이었다. 

단 하나 논의로 삼은 것은 자칫 감정적인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관계라는 게 위계를 가진 수직의 축에서 그걸 초월하는 수평의 축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런 토론회를 통하여 그저 큰 혼란을 겪지 않고도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사람의 철학, 삶의 방향뿐만 아니라 자세한 개인사정을 알게 되어 매우 친밀감이 높아진다.

토론자 중에 혼자서 주식과 세계 경제를 연구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주식에 문외한들이었기에 그의 얘기를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그는 세계의 경제흐름을 읽는 눈과 좋은 주식 고르는 법 어떤 회사가 발전 가능성이 높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설명해주었다. 그런가 하면 세계 2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향후 경제 동향 등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모두 귀를 종긋하고 들으며 때때로 질문을 이어갔고 그의 강연은 한번이 아니라 삼회에 걸쳐 이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의 절대 관심은“그래서 지금 어떤 주식을 사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가?”와 “당신은 얼마나 벌었느냐?”였다. 그는 씩 웃으면서 “돈은 못 벌었고요 오히려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 정도 날렸습니다.”였다. 역시 아는 것과 버는 것은 다르다“라는 말을 곁들이며......

많을 때는 이백두나 넘는 소를 키웠던 분의 말에 의하면 소고기는 날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데 제일 맛있는 부위는 자기도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지만 소 한 마리에서 겨우 한, 두 근 정도 나온다고 한다. 그 부위는 소를 해체하고 각을 뜨는 사람의 몫이라서 아무리 소 주인이라도 가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먹어본 소의 가장 맛있는 부위는 수소의 성기라고 했다. 소의 성기를 세로로 갈라서 소금. 식초 등에 담가 며칠 숙성시킨 다음 숯불에 구워먹으면 잡내 하나 나지 않고 식감 또한 쫄깃하여 천하의 일미라고 하는데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 병실 프로그램 이야기가 병원 내에 퍼져 수간호사들의 방청이 이어졌고 이웃 병실 등에 권하여 수강하고 벤치마킹한 후 다른 방으로도 이어졌다. 그건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순기능인데 환자들이나 병원 측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인지라 작정하고 각 병실에 적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간호사 한 사람이 찾아와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상담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병원에 치료차 입원해있는 사람인지라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슬기로운 병원 생활은 어떻게 지내는가에 따라 썩 나이브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거기에 지배받지 말고 전화위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육신의 치료뿐 아니라 마음의 위안까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창진/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대표이사, 꿈이 있는 마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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