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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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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바다 너머의 왜국의 바람은 평양성의 바람과 달랐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야마토(大和)의 바람엔 이름 모를 풀 비린내와 바다 소금이 섞여 있었다. 666년, 아버지 보장왕의 명령으로 일본에 지원군을 청하러 왔을 때만 해도, 고약광(高若光)은 자신이 다시는 대동강의 푸른 물결을 보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저하, 대동강이 피로 물들었다 합니다. 평양성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668년 가을, 왜국의 객사에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온 서반 장수가 전한 소식은 약광(若光)의 정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나당연합군의 철기무기아래 수백 년을 이어온 고구려의 하늘이 깨졌다. 지원군은커녕, 그가 돌아갈 집도, 지킬 나라도 사라져 버렸다.
그날 밤, 약광은 객사 뜨락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보았다. 북두칠성은 평양에서 보던 것과 같은 자리에 떠 있었으나, 그 빛을 비춰줄 고구려의 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스물 남짓의 젊은 세자는 칼자루를 쥐고 주저앉아 목이 쉬도록 울었다.
세월은 야속할 만큼 흘렀다. 조국을 잃은 왕자는 아스카의 왕조에서 '고마노조손(高麗朝朝臣)'이라는 관위를 받고 살아가야 했다. 왜국 사람들은 그를 '고구려에서 온 왕자님'이라 부르며 대우했으나, 그 화려한 관복이 약광에게 그저 저주와 같았다. 어느덧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716년. 약광은 조정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동쪽의 황무지 무사시노(武藏野)로 가게 해주십시오. 그곳에서 흩어진 내 고국 고구려의 동포들을 모아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조정에서는 그 험한 변방으로 가려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약광의 의지는 강했다. 신라의 압제를 피해, 당나라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고구려 유민들이 섬나라 각지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돌아갈 조국을 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구휼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를 잊지 않고 살아갈 자신들만의 터전이었다.
동쪽으로, 더 동쪽으로. 약광은 1,799명의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간토의 거친 황무지 무사시노로 향했다.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풀숲, 억센 자갈밭. 고구려의 유민들은 희망을 잃은 눈으로 허허벌판을 바라보았다. 그때 약광이 나섰다. 그 옛날 평양성에서 입었던 붉은 비단 도포는 낡아 문드러져 있었으나, 그가 허리에 찬 고구려의 명검 환두대도만큼은 여전히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모두 들어라! 우리의 고향 요동과 만주도 처음엔 이러한 황무지였다! 주몽 할아버지께서 첫 깃발을 꽂으셨듯, 우리도 이곳에 새로운 고구려를 세울 것이다. 조국 고구려는 망했으나, 고구려의 피는 우리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곳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약광이 먼저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왕자의 피가 땅에 떨어지자, 멈춰 서 있던 유민들의 눈에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날부터 무사시노의 대장간에는 거대한 망치 소리로 가득 찼다. 고구려에서 익힌 제철 기술로 쟁기와 날카로운 농기구를 만들었고, 산에서 물길을 끌어와 논을 일구었다. 여인들은 고구려 방식의 짱짱한 베를 짰고, 사내들은 말갈족을 호령하던 옛 기상으로 말들을 길렀다.
황무지는 수년 만에 푸른 논밭과 풍요로운 마을로 변했다. 왜국 조정은 이 마을을 가리켜 '고마군(高麗郡)'이라 이름지었다. 잃어버린 나라의 이름이, 왜국땅의 지도로 새로이 태어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약광이 노환으로 눈을 감던 날, 고마군의 유민들이 그의 처소 앞에 모여 통곡했다. 늙은 왕자는 창밖으로 보이는 웅장한 가라코산(韓神山)을 바라보았다. 비록 평양의 모란봉은 아니었으나, 동포들이 흘린 땀방울로 일군 이 땅 역시 이제는 그들의 고향이었다.
"눈물을 거두어라..." 약광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자식들과 유민들에게 말했다. "나는 비록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뼈를 묻으나... 너희는 이 땅에서 꿋꿋이 살아남아라.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는다면... 고구려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약광이 거친 숨을 거두자, 밖에서는 동포들이 부르는 고구려의 옛 노래 고려악(高麗樂)이 서럽게 들려왔다. 유민들은 그들의 지도자이자 왕자였던 약광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작고 정성 어린 사당을 지었다.
세월이 천 년 넘게 흐른 오늘날까지도, 사이타마현의 깊은 숲속 고마신사(高麗神社)에는 약광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60대를 이어 내려오며, 지금도 향을 피우고 있다. 나라를 잃었으나 결코 꺾이지 않았던 고구려 왕자 고약광. 그의 붉은 마음은 그렇게 동쪽 바다 너머, 낯선 땅의 뿌리가 되어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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