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낯선 이국 땅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힌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과 눈물을 다룬 ‘귀향’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7만5천명이 넘는 후원자들과 배우와 스태프들의 자원봉사, 14년간 계속된 조정래 감독의 헌신과 간절한 기도로 만들어진 국민 영화가 주는 감동과 충격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3일 오후3시, 포천신문사로 예전 청성초등학교 교감이었고, 지금은 동두천 소요초등학교 교장인 최총식 선생님이 올해로 97주년을 맞이하는 삼일절, 독립투사였던 조부 최병현 선생님의 독립유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한 기쁨을 알리러 내사해 또 다른 '귀향'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총식 교장의 조부 봉암 최병현은 1888년에 태어나 한학과 천도교에 심취했다고 한다. 천도교 남원교구장 유태홍과 함께 3.1 운동의 해인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매진했으며, 해방 후에는 남원군 건국위원장인 유태홍 선생과 함께 일했다.
독립운동가였던 봉암 최병현 선생의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최병현은 1888년 10월10일 전라북도 남원군 주천면 주천리 하주 188번지에서 태어났다. 한학과 천도교에 심취한 성장기를 거치고 스무살이 되던 즈음 1919년 삼일 독립만세 운동을 앞두고는 2월부터 3월 초까지 순창, 장수, 무주, 진안, 광주, 청주, 대천 등을 비밀리에 돌아다니면서 서울에서의 움직임을 알려주고 일제히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3월2일과3일에는 남원군내 곳곳에 유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게시했다. 3월23일에는 천도교 남원교구 주최로 독립선언식을 개최하려고 계획했으나 일본헌병대의 강제해산으로 선언식은 무산됐다.
이어서 4월4일 오후2시에는 남원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실시해. 천도교 및 기독교인들과 함께 광한루 앞 광장에서 만세운동을 한 후 남원 헌병청을 향해 돌진했다. 당시 일본 경찰의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남원 항일운동사’는 전한다.
일본경찰은 최병현을 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지목하고 최병현의 자택 및 주변을 뒤졌으나, 그는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충청, 전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천도교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그 후, 일본경찰에 붙잡혀 남원헌병청에 구금돼 모진 고문과 심문을 당했다. 기자가 당시의 재판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최병현은 “남원 사람들의 인심을 동요시켜 치안을 방해”한 죄목으로 3년간 투옥됐다.
1921년 옥고 후, 천도교 남원교구장의 성금을 모아 최병현은 다시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를 돕기 시작한다. 1945년 이후에는 남원군 건국위원장인 유태홍과 함께 일하다가 1951년10월30일 사망했다.
최병현의 후손들은 할아버지가 예전에 독립운동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구전으로만 들었다고 한다. 이미 100여 년 전의 일을 지금에 와서 다시 들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궁핍한 삶의 무게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죄로 후손들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끔찍한 일을 겪은 조부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조부의 기록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
최총식 교장은 이야기로만 듣던 조부의 항일운동의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되찾으려 결심했다. 조부가 남원에서 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후손들을 만나고 그 지역 원로들을 찾아서 묻고 또 들었다.
지난 4년간 천도교 본부의 자료와 국가기록원의 기록물, 유대홍 등 3인의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의 판결문(1919.4.8.), 대정 8년 형공 제113호 자료, 남원항일독립운동사 (윤근영, 최원식 편저), 독립운동사 자료집(제5집)의 3.1운동 재판기록문, 향토문화전자대전(디지털 남원 문화대전) 등의 문헌 등과 자료 등을 샅샅이 조사해 행정자치부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다.
2016년3월1일 비로서 고 최병현 선생은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하게 됐다.
최병현의 독립유공자상 수상으로 최총식 교장은 뿔뿔이 흩어졌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24명 남짓한 남원의 독립유공자 후손들 사회에 새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얼마간의 성금을 모아, 남원에 독립유적비를 만들어 독립운동의 기상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따뜻한 마음과 눈물이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