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같이 흘러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다. 어느덧 2004년 추운 겨울, 함박눈이 온 대지를 흰 동산으로 만드는 계절. 며느리는 만삭이 되어 친정에서 생활을 하고 나는 아들과 생활하면서 식사를 해결하는 형편이었다.
2월 말이면 할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은 무슨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며느리가 아기를 탄생하면 목돈을 준비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에게는 거금인 30만원을 준비하며, 할아버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드디어 2월 26일, 며느리가 어여쁜 손녀딸을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부족한 죄인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할아버지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하며 기쁨의 기도를 올렸다. 며느리는 일산 조산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만 나면 며느리와 손녀딸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3월초, 따뜻한 봄날이 되자 눈이 녹은 길은 미끄러웠다. 아들과 나는 손녀딸을 상봉한다는 기쁨으로 마음은 먼저부터 일산 조산원에 가있었다. 1시간 30여분만에 일산 조산원에 도착한 나와 아들이 바쁜 걸음으로 조산원실 2층에 올라가니, 며느리가 복도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는 핼쑥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면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잠시후, 조산원실에 들어서는데 안사돈께서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나는 “따님께서 귀여운 공주님을 선물하니 너무 기뻐,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하고는 귀여운 손녀딸과 상봉했다.
나는 손녀딸 앞에 앉아서 중죄인임에도 아름답고 귀여운 공주님을 선물하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30만원 봉투를 꺼내 며느리 손에 쥐어주면서 “참으로 수고하였다”고 등허리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잠시후에 아들이 들어왔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체 안사돈께 며느리 몸조리를 부탁하고 다시금 포천으로 향했다. 달려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니 저멀리 보이는 야산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모습이다. 처와 같이 손녀딸 상봉을 못하는 나의 마음도 얼음이 되어 녹지를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석식이 마친 뒤, 성령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 다음달 4월 20일에 있을 장애인행사를 위해 또 다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