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손을 잡아끌기에 문을 나섰다. 한참을 지나 43번 도로 양 어깨로 급조한 상가들의 조명이 손을 흔든다. 상가 뒤로 너른 들판은 조립식 공장들이 수근거릴 뿐 자연과는 난잡하다. 생산으로 땀흘려 경쟁하는 크고 작은 공장들의 호흡이 가쁘다. 여기저기 쓰레기는 맨살로 버려졌거나 어설피 포장이 되어 흩어져 있다. 연기를 뿜던 높은 굴뚝은 이미 주저앉았고 중소기업의 손은 대기업이 먹다 남긴 밥그릇만 뒤적거린다. 대기업이 기침을 하면 중소 기업은 몸져 눕는 것이 경제의 지표다.
그나마 디지털 시대에 자본의 잔치상에서 밀려난 산업의 3D업종들이 변두리의 파수꾼이 되었다. 아날로그 산업의 이삭을 줍기에 해가 저문다. 대기업의 몸집에 눌려 기술집약적 하모니카를 부는데 주눅이 들어 박자를 놓쳤다. 더구나 신용조차 부도가 난 영세업자는 철 지난 옷을 주어 입기에도 허둥지둥이다. 희망찬 꿈과 기술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보증을 서려 들지 않는다. 경영의 멀미와 구토 때문에 현기증이 심각하다. 중독과 빈혈로 인한 쓰레기만 토악질하여 자본의 악취가 극심하다. 쓸만한 산지에는 주인 잃은 조립식 창고와 때묻은 보루만이 비에 젖는다. 가끔 들개들이 대문 밖을 서성이다 숨는다. 이것이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된 자원의 벨트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산업 발전을 위한 예비군이었음을 결코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은 소시민의 인적 자원이었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논밭과 축산은 경쟁력을 벌써 상실하였고 본토박이는 위기의식으로 배타적이 되었다. 인간 문화의 초석인 미와 균형과 조화가 위태롭다. 이것이 소시민의 삶터와 공존하는 열악한 현실이다. 그래도 개발의 티켓을 얻으려 줄서기에 혈안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구석구석 난잡한 아우성이 공해와 뒤섞여 서로 할퀴고 찢긴다. 답답한 행정관서는 예산 타령으로 속수무책이다. 그저 골목마다 음식물 찌꺼기로 도둑고양이만 키운다.
백성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행정관서의 몫이 엄연히 있다. 백성을 우롱하는 선전벽보가 아니라 행사장마다 틀어 놓는 시그널 뮤직(signal music)도 되어서는 안된다. 그 해법은 활용과 적절한 처리에 있다. 긍정적 행정 지도가 수범되어야 한다. 그리고 백성의 일꾼은 권력의 부스러기나 줍는 넝마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인간의 땀에 젖은 에너지와 정직한 양심이 다시 분발해야 한다. 거리를 청소하면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고 양심을 청소하면 진실하고 화목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면 살만한 세상에 맑은 이슬이 내리고 찬란한 문화는 정신을 살찌우게 된다. 내핍하여 찌꺼기는 줄이고 쓰레기는 분리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좋다. 환경을 위한 연합과 포럼도 중요하지만 그 우선은 양심적 도덕성을 먼저 회복하고 가정과 기업의 주변 정돈과 정화가 선행되어 깨끗한 정서적 가치를 고취 해야할 일이다. 도덕성과 양심의 결백을 최고의 가치로 주먹을 불끈 쥐던 노 무슨 전직 대통령도 돈 먹고 수렁에 빠졌다. 권력의 찌꺼기가 인간쓰레기를 만들었지 않은가?
이제는 시대착오가 시대정신과 시대문화로 거듭나야 한다. 자본의 변태와 변질은 품질을 개량하고, 권력은 사회를 위하여 부패에서 탈바꿈해야 하며, 인간의 양심은 하늘을 거역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생명에 대하여 경외해야 한다. 삶의 최고의 조건은 진선미다. 또 아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