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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야기 = 27] 셜리 템플(Shirley Temple, 1928˜), 1930년대 미국의 희망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04일

지금 같으면 유치원에나 다녀야 할 어린아이가 1930년대 오랜 경제공황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은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신동으로 불리며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아역스타였다. 10년 동안에 4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을 정도로 어느 성인배우보다도 인기가 많았으며 최고의 상품가치를 지닌 스타였다. 셜리 템플 인형과 드레스 그리고 머리에 꽂는 나비매듭리본 등이 상품화되어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반면에 많은 셜리 템플의 영화에서 묘사된 인종차별적인 장면들로 인해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할리우드에 의해서 자행되는 아이의 성애화(the sexualisation of child)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는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셜리 템플, 영화의 가장 어리고 성스러운 괴물" 이라는 그림(Shirley Temple, The Youngest, Most Sacred Monster of the Cinema in Her Time, 1939)을 그릴 정도로 1930년대에 끼친 셜리템플의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셜리 템플은 댄스학교를 다니던 3살 때인 1931년에 에듀케이션 영화사(Educational Pictures)에 발탁되어 영화를 시작했으며 20세기 폭스 영화사(20th century Fox)와 1933년에 전속계약을 맺은 이래 세계적인 아역스타로 발 돋음 했다. 셜리 템플의 스타성은 1934년에 만들어진 영화 <브라이트 아이즈(Bright Eyes)>에 잘 나타나 있다. 6살 밖에 되지 않았던 셜리 템플은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극장으로 초유의 관객들을 끌어 들였다. 이 영화는 거의 파산직전에 놓여 있던 20세기 폭스 영화사를 기적적으로 구해냈는데 셜리 템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첫 영화이기도 했다. 8살이 된 1936년은 셜리 템플의 출연료가 기하학적인 숫자를 기록할 정도로 몸값이 치솟았고 그녀의 영화는 경제가 침체되어 있던 미국 사회에 희망과 낙관주의를 가져왔다. "미국에 셜리 템플이 있는 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가 한 말이다. 경제공황으로 인해 희망을 잃은 국민들에게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으로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해 주는 셜리 템플의 존재가 1930년대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했다. 셜리 템플의 극중 배역은 대부분 부모중의 한 사람이 없거나 모두 죽은 결손가정의 아이였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어린 아이, 이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셜리 템플의 부모역할을 하고 싶게 만드는 그 상투성은 수 년 동안 20편이나 되는 영화 속에서 지속되었지만 박스 오피스의 1위를 고수하며 끊임없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셜리 템플의 댄서로서의 능력, 특히 탭 댄서로서의 능력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5살의 나이에 복잡한 탭 댄스 안무를 소화해 내었다. 물론 그녀의 능력에는 유능한 조력자가 있었다. 유명한 댄서였던 빌 로빈슨(Bill Robinson)이 셜리 템플의 댄서로써의 능력을 발전시켜 주었다. 빌 로빈슨은 셜리 템플을 위해 개인적으로 탭 댄스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그녀에게 주어진 안무를 발전시켜 주었다. 그렇지만 빌 로빈슨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특히 남부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는데 그들은 영화 속에서 빌 로빈슨이 셜리 템플과 함께 연기하는 것 자체를 혐오했으며 특히 손을 잡는 장면은 미국 남부의 여러 도시에서 삭제되어 상영되기도 했다.


셜리 템플은 1935년 7살의 나이에 미국 아카데미상 아역상(the special Juvenile Performer Academy Award)을 받았는데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유명한 스타가 되어야만 남길 수 있는 핸드프린팅(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그라우만스 차이니즈 극장(Grauman`s Chinese Theatre) 앞뜰에서 매년 행사가 진행)-셜리 템플은 핸드프린팅을 남긴 최연소 여배우로도 기록되고 있다. 21살이 되던 1949년에 셜리 템플은 영화계에서 은퇴를 했다. 대중들은 성인이 된 셜리 템플을 인정하려들지 않았으며 어린 셜리 템플을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다. 그녀 역시 변화하는 영화산업에 적응하는 것 보다 가족들을 꾸리는 일에 열중했다. 1967년부터 공직에 몸을 담기 시작한 셜리 템플은 가나, 체코 대사를 역임하며 1990년대 까지 성공적인 외교관으로 만년의 인생을 보냈다.


현재 셜리 템플의 영화 <소공녀(The Little Princess, 1939)>가 시중에 DVD로 발매되고 있는데 아역배우로써의 전성기는 지난 나이지만 첫 번째 총천연색 영화이며 셜리 템플의 매력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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