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는 훈구파로, 기묘사화를 주도한 심정의 아우다. 일찍이 문과에 뽑혀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라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는 형 심정과 달리 자신의 재주를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훗날 심정이 화를 당할 때 무사할 수 있었다.
그는 형이 장차 화를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여러 번 충고하였다. 그러나 형은 그의 말이 어리석다 여기고 전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심의는 형의 집에 놀러갔다가 벽에 뚫린 쥐구멍을 보고는 그것을 가리키며 형에게 말했다.
“저 쥐구멍은 형이 나중에 나가고 싶어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시험삼아 한번 나가보는 게 어떠합니까?”
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 심정이 죄를 입어 죽음에 이를 위기에 처하자 그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쥐구멍은 저기 그대로 있는데 형은 어디로 갔는가?”
한번은 심정이 남곤과 더불어 작은 사랑채에서 일을 논의하는데 심의가 밖에서 들어오다가 창을 열어 젖히며 말하였다.
“두 소인이 앉아 있군.”
남곤이 크게 노하여 얼굴빛이 변했으나 심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곤을 달랬다.
“내 아우가 본래 어리석으니 원컨대 대감은 용서하시오.”
형 심정은 기묘사화를 일으킨 후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권세를 부리며 많은 땅을 긁어모았다. 심의는 형이 너무 많은 땅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 늘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심의는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심정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새벽부터 왜 눈물을 쏟는 게냐?”
“꿈속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꿈에 나타나 하신 말씀을 듣고 이렇게 우는 것입니다.”
“그래, 부모님께서 너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작은 아들이라 살아있을 때 늘 걱정이 많았다. 그리하여 아무 데 있는 밭과 노비 누구누구를 네게 물려주려 했던 것인데, 그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 안타깝구나”하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심정이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울쩍하였다.
“부모님께서 너를 생각하시는 게 지극하시니, 내 어찌 그 땅과 노비를 아끼겠느냐? 너에게 그 땅과 노비를 주어 지하에 계신 부모님의 혼을 위로하리라.”
이윽고 심정은 그 자리에서 땅과 노비문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뒤 심정은 아우에게 속은 것을 깨달았다. 억울한 생각이 든 심정은 역시 새벽에 일어나 거짓으로 울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꿈에 부모님을 뵈었더니 “아무데 있는 밭과 노비 누구누구는 큰 아들에게 주려 했던 것인데 말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시니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심의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그건 개꿈이오.”
심의는 서경덕, 성세창 등과 친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그가 성세창의 집에 갔다가 뒤뜰에 내놓고 말리던 비단 세 필을 몰래 훔쳤다. 그러자 비단을 지키고 있던 계집종이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
“심 좌랑이 비단을 훔쳐갑니다!”
성세창의 부인이 급히 다른 비단 세 필을 가져오면서 말하였다.
“말리고 있는 비단은 겉옷을 만들려는 것이니 이 비단을 대신 가져가십시오.”
그러자 심의는 부인이 가져온 비단까지 챙기며 말했다.
“이미 겉감을 얻고 속감까지 얻었으니 부인께서 내 마음을 잘 아시는구려.”
그러고는 그 비단을 모두 잘라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심의(沈義)
1475년(성종 6) ~ ?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의지(義之). 호는 대관재(大觀齋)이다.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형과 달리 모사를 모르고 직언을 잘하였다. 이 때문에 1509년 공신들에게 미움을 사서 여주부 교수(敎授)로 좌천되었다. 이때 정치의 도리를 밝힌 『일의잠(一宜箴)』을 왕에게 올려 신임을 받고 사헌부 감찰에 발탁되었으며, 이어 공조좌랑이 되었으나 관물(官物)을 절취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행동과 말이 직선적이어서 사람들의 호감을 받지 못하였다. 다만 서경덕(徐敬德), 성세창(成世昌) 등은 그의 뜻을 이해하고 친하게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