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나 댄서들에게 있어서 상대배역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기와 춤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조역이나 상대역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모노드라마나 일인무(一人舞)가 있기는 하지만 파트너로 공연하는 것만큼 재미를 줄 수 없고 특히 남녀 파트너쉽 만큼 로맨틱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에서건 남녀 파트너의 전설들이 있다. TV, 연극, 영화, 오페라, 무용 등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파트너쉽은 시대를 초월하여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한때 한국에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 TV시리즈 <X-파일>. 극중에서 동료 FBI 요원으로 나온 데이빗 듀코브니(David William Duchovny)와 질리안 앤더슨(Gillian Leigh Anderson)은 공중파 방영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발레계에서는 러시아(구 소련)의 키로프 발레단(Kirov Ballet)에서 망명한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Hametovich Nureyev)가 영국 로열발레단(Royal Ballet)에 출연하면서 이미 한물간 마곳 폰테인(Margot Fonteyn)과 파트너를 이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들의 명연은 현재 시중에 발매되고 있는 <백조의 호수(Swan Lake)>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만담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장소팔과 고춘자가 올드 세대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고 장수드라마였던 <전원일기>의 최불암과 김혜자는 20년 넘게 극중 부부로 출연하여 많은 시청자들이 진짜 부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이들 커플들은 여러 작품들에서 또는 한 작품에서 오랜 시간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며 파트너쉽을 유지한 사람들인데 뮤지컬 영화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파트너쉽이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와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가 바로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19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전설로 남아있으며 현재까지도 이 두 사람의 로맨틱한 노래와 댄스 파트너쉽을 뛰어넘는 커플은 나오지 않고 있다.
프레드와 진저는 총 10편의 뮤지컬에 함께 출연했다. 대부분의 뮤지컬들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둬 RKO 영화사를 돈 방석에 앉혀놨는데 이들 뮤지컬 영화들은 작품성면에서도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탑 햇(Top Hat, 1935)>, <스윙 타임(Swing Time, 1936)>, <쉘 위 댄스(Shall We Dance, 1937)> 등이 특히 유명한데 <스윙 타임(Swing Time)>과 함께 <탑 햇(Top Hat)>은 춤과 노래 그리고 드라마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의 효시이며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끼게 되고 오해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나중에는 오해가 풀리면서 남자가 여자의 사랑을 얻는다는 플롯은 이들 두 사람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해 더 이상 진부하지 않은 줄거리가 되었다.
완벽주의자 프레드, 스타일과 재능을 겸비한 진저. 탭 댄스를 춘 적이 없고 더우기 파트너와 함께 연기하며 춤을 춘 적이 없는 진저였지만 프레드의 리드하에 훌륭한 송 앤 댄스(Song & Dance)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 전례가 없는 우아하고 탁월한 기량의 댄스 장면들은 특별히 선곡된 아름다운 노래에 실려 화려한 세트위에서 환상을 창조해냈다. 1911년에 불었던 알렉산더스 래그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의 댄스 열풍처럼 프레드와 진저의 파트너쉽 이후 ‘어 파인 로맨스(A Fine Romance)’ ‘칙 투 칙(Cheek to Cheek)" 등 로맨틱한 명곡들과 함께 또 다른 댄스 열풍이 불었다.
그렇지만 파트너쉽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로의 성격적인 충돌도 있었겠지만 촬영하거나 연습할 때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X-파일>의 데이빗 듀코브니와 질리안 앤더슨은 자주 타블로이드 신문에 두 사람의 갈등에 관한 기사가 오르내렸다. 촬영을 하면서 문제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도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프레드는 자신의 뮤지컬 영화의 안무를 직접 담당했다. 프레드의 프로의식은 진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연습에 참여하도록 강요했다. 스케쥴이 이미 짜여진 다른 뮤지컬 영화의 연습과는 달리 스케쥴 외의 시간에도 리허설을 강행한 프레드의 안무 연습은 진저로 하여금 긴장과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만족할 줄 모르는 프레드의 완벽주의는 그 어떤 배우도 견뎌내기 힘든 연습과정이었다. 그렇지만 진저는 참아내었고 결국 10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1986년, 프레드는 죽기 직전에 술회했다. “내가 함께 춤을 췄던 모든 여자 배우들이 결국은 (나의 안무를 소화) 해냈지만 그들은 항상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진저만은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스포츠 댄스와 아이스 댄싱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남녀가 파트너를 이룬 듀엣은 더 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레드와 진저의 유명한 파트너쉽은 오늘날에도 장르를 초월하여 많은 예술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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