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발레와 마스게임을 한 번이라도 관람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대형 스타디움과 수면위에서 연출되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모양은 꽃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글씨와 추상적인 사물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마치 최근에 창조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스게임과 수중발레에서 사용하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연출 이미지는 안무가이며 감독인 버스비 버클리(Busby Berkeley, 1895˜1976)로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대 후반 경제공황이 할리우드마저 강타하며 1930년대 초반까지 영화제작에 많은 돈을 들일 수 없었던 메이저 영화사들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모두가 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all-talking, all-singing, all-dancing)는 표어를 앞세운 뮤지컬들이 아류들의 무분별한 복제와 함께 1930년까지 무수히 쏟아져 나오면서 관객들은 식상하기 시작했고 뮤지컬 영화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메이저 영화사들은 가뜩이나 경제공황으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고 있었던 터라 투자자 유치와 관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이때 혜성처럼 할리우드에 등장한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가 버스비 버클리였다.
버스비 버클리는 많은 뮤지컬 영화 안무가나 감독들이 이미 거쳐 온 것처럼 처음 브로드웨이에서 안무를 시작했다. 사실 버스비 버클리는 훌륭한 안무가도 댄서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무대에서건 스크린에서건 뮤지컬이 필요로 했던 독창성이었다. 풍부한 아이디어, 화려함과 현란함을 지닌 안무,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깜짝 놀랄 만한 기하학적 패턴의 구도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버스비 버클리는 댄서들의 개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버스비 버클리 이전에 그 누구도 눈부신 패턴 속에서 아름다운 코러스 걸들의 무리를 돋보이게 하지는 못했다. 후일 그의 댄스창조물들은 초현실적인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때때로 배우나 댄서들을 꼭두각시로 다루는 그의 행동이나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작업 스타일로 인해 많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39)>의 개봉과 함께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주디 갈런드(Judy Galand)가 <베이브스 인 아암스(Babes in Arms, 1939)> <스트라이트 업 더 밴드(Strike Up the Band, 1940)> 등 일명 "베이브스(Babes) 시리즈" 작업을 할 때 버스비 버클리로 인해 끊임없는 두통과 스트레스를 호소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1차세계대전중에 야전포병중위로 전쟁에 참가한 버스비 버클리는 전쟁터에서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정교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 배웠다고 술회했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안무가로 활동하면서부터 코러스 걸들의 기술적인 춤을 별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에 자신이 고안한 기하학적인 패턴 안에서만 움직이고 적응할 수 있는 코러스 걸들을 선호했다. 그가 안무한 뮤지컬 넘버들은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방대하고 조직화된 장면들이었다. 연극무대 위에서 소화해 내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넘버들은 유성영화가 도래하며 할리우드에서 빚을 발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뮤지컬이 대중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큰 요인은 즐거움과 새로움이었다. 버스비 버클리의 등장은 곧 영화 촬영기법의 발전과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의미했다. <우피(Whoopee, 1930)>를 시작으로 버스비 버클리는 기존의 획일적인 안무와 카메라 샷을 탈피하는 실험을 시작했는데 공간, 움직임 그리고 오버헤드 샷(overhead shot)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뮤지컬들을 창조해냈다. 1933년은 버스비 버클리의 인기가 최고 절정에 이르렀던 해이기도 하다. 경제공황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뮤지컬 영화의 새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골드 디거즈 1933(Gold Diggers of 1933)>, <42번가(42nd Street)>, <푸트라이트 퍼레이드(Footlight Parade)> 등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버스비 버클리의 창조적이고 종종 섹스적인 댄스 넘버들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특히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정신과도 같은 집산주의의 묘사와 집단적인 아름다운 여성들을 상품화해서 남자들의 시선을 즐겁게 해주는 판매 전략과도 같은 댄스넘버들이 영화평론가들에게 장황한 비평문을 만들 여지를 주기도 했다.
복합적인 기하학적 패턴의 카메라 샷으로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영상(kaleidoscopic on-screen performances)을 만들어낸 버스비 버클리는 오늘날 뮤지컬의 선구자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42번가(42nd Street, 1933)>, "골드디거(Gold Diggers) 시리즈(33/ 35/ 37)", 주디 갈런드(Judy Galand)와 미키 루니(Mickey Rooney)가 주연한 "베이브스(Babes) 시리즈" 등은 오늘날에도 DVD나 영상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명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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