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때의 일이다. 숙종이 한창 장희빈의 재색에 끌리어 조정이 소란하고 나라 안의 민심이 불안할 때였다. 당시 청주의 한지(韓祉)가 충청감사로 있을 무렵에 전답의 일이 있어서 청주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감사가 온 까닭에 이 곳의 원들이 가장 아름다운 기생을 가려서 수청을 들게 하였다. 강도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의 재색이 뛰어남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조일 정도였다. 이 고장의 원이 감사의 환심을 사서 노여움을 덜 생각으로 강도로 하여금 항상 그의 옆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감사가 청주에 이르러서 3일이 되던 날 밤의 일이다. 그가 매우 고단하여 깊이 잠이 들었는데 문득 발을 뻗다가 누구의 다리엔가 살이 닿았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절색인 강도의 몸에 다리가 닿은 것이었다.
이 때에 기생 강도가 말하기를, "감사 대감, 대감께서 여기에 오신 것은 나라 임금의 명을 받아 오신 줄은 압니다. 그러나 제게 여기 원님들이 감사님을 잘 모시라고 명하시었는데, 만일 감사님께서 저를 사랑하여 주시지 않으신다면, 장차 저의 죄가 클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하룻밤의 사랑이라도 내려 주십시오. 계집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말씀을 올립니다."
강도가 스스로 아양을 떨면서 자기를 가까이하여 줄 것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한지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임금님의 명을 받아 여기에 온 사람이고, 이 곳 원들의 잘못한 정사가 있으면, 그것을 고쳐야 한다. 기생에게 눈이 어두워서 그릇된 정사를 눈감아 줄 수는 없다. 또 나의 부인 이외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어 집안이나 정사가 혼미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라. 다만 너의 맡은 소임만은 풀어주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말하고 금침을 가져오게 한 연후에 한방에서 13일을 지냈으나, 기생에게 손 한번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끝나서 자기 관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지가 떠난다는 말을 들은 강도는 한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것을 본 한지는, "작별을 한다 하니 슬프냐? 그러나 정이 들었다고는 할 수 없을 터인데." 하고 물으니, 강도가 눈물과 함께 말하기를, "너무 냉정하심에 무슨 정이 있겠습니까? 저의 아름다움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감사님께서 만은 지나치게 냉정하시어 아무 인연도 맺지 않고 돌아가시니, 그것이 분하옵니다. 제가 그렇게도 대감께는 쓸모 없는 계집이오니까?"
강도가 자신의 재색이 업신여김을 받자 분함을 못 참는 것이다.
이 말에 한지는 껄걸 웃으면서, "얘 강도야, 너의 재색이 못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감사가 원의 그릇된 정사를 고치려고 왔다가 수청드는 계집에 홀려서 정사를 바로잡지 않고 돌아간다면, 그 더러운 소문이 두고두고 만년은 계속이 될 것이고, 너를 마음으로만 사랑하며 정사를 바로잡아 놓고 간다면, 정사에 대한 선정과 함께 네 마음과 같은 향기로운 기분이 백세는 갈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섭섭히 생각지 말라." 하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정사에만 열중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기생을 가까이 있도록 하여도, 이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가 나의 행동을 막지 못하면서 남의 상관이 되어 다른 사람의 그릇된 일을 어떻게 막으려고 하겠느냐?" 그는 항상 올바른 정사에만 힘을 써서 그의 향기로운 이름이 백세에 남도록 애를 쓰던 사람이었다.
한 지(韓 祉)
1675년(숙종 1) ~ 1720년(경종 1)
자는 석보(錫甫). 호는 월악(月嶽). 본관은 청주.
집의(執義) 태동(泰東)의 자. 공주 출신
1699년(숙종 25) 생원시에 합격. 1705년 참봉으로 문과에 급제.
정언(正言). 지평(持平). 부교리(副校理)
1718년(숙종 44) 충청도 관찰사. 1720년(경종 1) 전라도 관찰사 재직 중 병사. 선정을 베풀었고 청백하였으며 문명(文名)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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