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성당의 주일학교에서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다. 학년마다 대표를 미리 뽑고 암송 대회 날 교인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신부님이 직접 평가하시는 방식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열심히 완벽하게 외웠고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모두가 놀랄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성경을 외워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때 엄마를 졸라 청치마에 빨간색 블라우스를 사달라고 했던 것 같다. 대 회 날 입고서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까지는 일주일이란 기간이 남아 있었고 난 완벽하게 외웠기 때문에 더 이상 날 따라올 친구가 없다고 확신 했다. 그래서 신나게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며 놀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가 1등을 하리라고 모두 기대했다.
기다리던 암송 대회가 열리던 날, 엄마 아빠 식구들도 모두 참석했고 내 차례가 되어 신부님께서 "몇 장 몇 절을 외워보세요" 라고 하셨을 때 그토록 달달달 외웠던 성경 말씀이 하얀 백지장이 되어 아련함 속에 홀로 서있는 내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내가 얼마나 창피했었는지, 한동안 친구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고 주일학교를 계속 빠졌다. 그 후로 엄마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 한없이 울었던 슬픈 기억이 있다.
내가 제일이라는 자만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을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내가 뛰어난들 내가 잘난 것이라고 착각에 빠지는 자만임을 알게 해준 내 어린 시절 경험이다. 지금의 나를 조금은 겸손하게 다듬어주는 교훈이었음을 깊이 감사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