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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야기 = 19] 1930년대 뮤지컬 개요 - 브로드웨이

윤우영 대진대 교수, 연출가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12일

 

예나 지금이나 정부의 경제정책 뒤에는 문화예술지원금 축소라는 논리가 있어왔다. 보수적인 정부일수록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는 어떤 정부나 대통령도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문화예술정책이라는 것이 있는가. 사실 현재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문화관광부 및 지방자치 행정부에서 주도하는 문화예술단체장 인선이나 국고배분 혹은 자체 문화예술지원금 편성 등은 로비를 하는 브로커(?)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순수한 문화예술인들은 항상 그렇듯이 좌절의 연속이 되고 있다.


물론 예술계 내부의 잡음이나 자리다툼으로 인해 제살 깎아먹기 식의 암투가 원인 제공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순수한 예술가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안일한 정책, 예술가를 무시하는 정책에 지칠 대로 지쳐만 가고 있는 현실이 대한민국 예술계이다.


1935년 미국. 경제 대공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져 가고 있을 때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은 공연예술계를 위해ꡐ연방정부 극장 정책ꡑ을 세웠다. 뉴딜정책이 한창이었던 당시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배우들의 출연과 티켓가격 등에 적극 개입하여 공연예술의 붕괴를 막고 창조력 고갈을 방지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당시는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과감한 미국의 문화예술정책 노력에 더욱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물론 루즈벨트 대통령 자신이 문화예술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순수예술과 예술인들의 위기를 방치하고 있는 한국정부와 공무원들에게 ꡐ연방정부 극장 정책ꡑ이 시사하는 바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많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할리우드로 떠나보낸 브로드웨이는 거리마저 삭막하기만 했다. 적어도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실업자들이 넘쳐났던 암울한 1930년대 에 브로드웨이의 가벼운 뮤지컬 코미디는 더욱 어울리지 않았다.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뮤지컬 코미디는 할리우드 영화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중들은 답답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다소 가격이 저렴한 영화관을 찾았는데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게 된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았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론 브로드웨이로 하여금 작품성향의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공연 제작자들은 날카로운 사회인식을 통해 정치와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영화와는 또 다른 관객층을 형성하게 했다. 이는 북 뮤지컬이 탄생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벼운 뮤지컬 코미디나 보드빌이 주종을 이루었던 당시 브로드웨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사회를 보는 주제의식이나 음악의 다양성과 깊이 면에서 브로드웨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보드빌류의 가볍고 흥겨운 뮤지컬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꾸준히 브로드웨이에 한 부류로 전통을 이어 갔고 일부 작품들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제작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진정한 풍자정신의 발로였던 보드빌의 벌레스크를 연상시키는 신랄함을 지녔으며 보다 투철한 시대정신을 반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다행이었던 것은 장기적인 브로드웨이의 공동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몇몇 탁월한 예술가들이 등장하여 브로드웨이 무대를 지켜주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느 시대에도 뒤지지 않는 명작들을 발표하여 암울했던 1930년대의 브로드웨이를 빛내주었다.


작곡가 조지 거쉬인(George Gershwin, 1898˜1937)과 작사가 아이라 거쉬인(Ira Gershwin, 1896˜1983) 형제, 작곡가 로저스(Richard Rodgers, 1902˜1979)와 작사가 하트(Lorenz Hart, 1895˜1943), 그리고 1930대에 스타로 발돋움한 콜 포터(Cole Porter, 1891˜1964) 등이 그들이다. 이 무렵 조지 거쉬인은 뮤지컬 명작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며 콜 포터도 신진이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을 각인 시켜주었던 최고의 명작들을 발표한 시기였다. 또한 서사극의 창시자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독일 작곡가 쿠르트 바일(Kurt Weill, 1900˜1950)이 히틀러의 압제로 인해 망명하게 되면서 193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데 일조하였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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