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어사 이관명 알현이오."
당하관인 이관명이 수의어사의 명을 받고 영남에 내려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옥좌에 정좌한 숙종은 용안에 희색이 만면하여 그를 맞았다.
"얼마나 객고가 심하였는가? 그래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던고?"
이관명은 국궁하여 임금께 문후를 올린 연후에,"상감께서 밝으시와 지방 관리들이 모두 맑아서 가히 민폐라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통영 소속 아래에 있는 섬 하나가 대궐 아무 후궁의 땅으로 되어 있사온데, 그 곳 백성에게 바치라 하는 것이 하도 많고 극심하여, 그 곳 백성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궁핍하고 아울러 원성이 자자하였음을 보았기로 감히 아뢰오."
이관명이 아뢰는 말을 듣고 숙종은 크게 노하였다.
"과인이 일국의 임금으로 조그만 섬 하나를 과인의 후궁에게 준 것이 무엇이 그렇게 나쁘다고 감히 비방하는고?"
크게 진노한 숙종은 철여의로 앞에 놓은 상을 때리니, 당장에 상이 박살나고 말았다. 궐내의 분위기가 이내 싸늘해지고 말았다.
임금의 진노를 들으면서도 관명은 조금도 굽히는 기색 없이, 또다시 소리를 가다듬어 아뢰기를, "소신이 상감을 모시고 경연에 참예 하올 때에는 이러지 않으시더니, 명을 받아 외지에 나간 지 일 년 동안에 상감의 과격하심이 이에 이르렀사오니, 이는 즉 상감께 간쟁하여 올리는 신하들이 없었다는 것이니 대단히 한심스러운 일이옵니다. 이러니 모든 신하들을 파직시키옵소서."
그는 서슴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숙종께 아뢰는 것이었다.
이러자 숙종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좌우에 시립해 있는 신하를 둘러보고는, "승지, 전교를 쓸 초지를 가져오게 하라."
모든 신하들은 관명에게 큰 벌이 내릴 것을 잘 아는지라, 눈을 아래로 감고 숨을 죽였다. 조금 있다가 승지 신유가 벼루와 초지를 대령하자, 숙종은 분부대로 쓰라고 명했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이 분부에 승지의 눈이 번쩍 떠졌으며 붓끝이 움직이지 않고 멈추었던 것이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인 까닭이다. 시립하고 있던 신하들도 눈알을 굴려 서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도무지 예측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숙종은 다시 언성을 높여,"승지, 나의 말을 못 알아듣는가? 어서 쓰라."
다시 분부하니 승지는, "예, 황공하오이다."
승지가 당황하여 부제학의 직함 쓰기를 마치니, 숙종은 또 이어서,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고 쓰라." 하는 것이었다.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만조백관이 이번에는 쑤군거리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명이라, 그대로 초지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숙종은,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 한다고 쓰라."
이렇게 잇달아 어명이 내리었다.
숙종은 이관명의 직품을 세 번이나 높이어 당장에 정경(正卿)으로 삼아 놓은 것이다. 이윽고 하교하기를"경의 옳음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알았기로 경을 호조판서로 앉히는 터이오. 경은 앞으로 그런 민폐가 있거든 항상 서슴지 말고 과감하게 폐지하여 나라를 태평하게 하라."하고 숙종은 옥좌에서 일어나 편전으로 드시었다.
이관명은 숙종의 성은에 감복하여 한참동안 부복하고 있었다.
이관명(李觀命)
1661년(현종 2) ~ 1733(영조 9)
본관은 전주. 영의정 경여(敬輿)의 손자. 대제학 민서의 아들. 문과에 급제, 교리를 거쳐 참판, 예조판서, 양관대제학, 이조판서에 점임. 반대당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의 무고로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아우 건명(健命)이 노론 사대신의 한사람으로 극형을 받자 이에 연좌, 덕천(德川)에 유배, 노복이 되었다. 그 후 진실이 밝혀져 풀려 나와 우의정이 되고 이어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정(文靖), 흥덕(興德)의 동산서원(東山書院)에 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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