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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 = 69] 익헌공(翼憲公) 이문원(李文源)

죽는 마당에 인사는 하고 가야겠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03일

리 효종 포천한시자 대표 


 


이문원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李天輔)의 양자이다. 이천보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재물을 탐하지 않았는데, 아들 이문원 역시 당대의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퇴계원에서 살 때였다. 그는 판서를 여덟 번이나 지냈으나 시골에 초가를 짓고 농사를 지었으며, 도롱이를 쓰고 냇가에 나가 낚시를 하며 소일했다.


어느 날 그가 냇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데 관복을 입은 도사(都事)가 개울 건너편에 도착하였다. 이문원이 고개를 들어보니 도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이보게 늙은이! 내가 급한 일이 있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신발을 벗기가 곤란하니 나 좀 업어주게."


이문원은 바짓가랑이를 걷고 개울을 건너 도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러고는 말없이 도사를 업고 개울을 건넜다. 도사는 거드름을 피우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렸다.


마침 그 도사는 공무(公務)가 있어 이문원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가 이문원의 초가에 도착하여 하인에게 물었다.


"대감께서 집에 계신가?"


그때 웬 늙은이 하나가 낚싯대를 멘 채 뜰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는가?"


도사가 뒤를 돌아보니 아까 개울가에서 만난 늙은이였다. 순간 도사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다.


"대감, 이놈을 죽여주십시오."


그러나 이문원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오히려 술상을 차려 후히 대접한 후 돌려보냈다.


말년에 그는 임금의 수어사(守禦使)로 있었는데, 죽음이 임박하자 마지막으로 임금을 뵙고 하직인사를 올렸다.


"신은 곧 죽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아첨하는 신하를 멀리하옵소서."


그는 임금을 뵙고 돌아가는 길에 매제인 판서 서유방(徐有防)을 찾아가 말했다.


"그대는 아첨을 일삼는 자이다. 하지만 그대는 나의 매제이니 죽는 마당에 잠시 만나 하직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는 앞으로 남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매제에게 마지막 충고를 남기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문원은 세상을 떠났다.




이문원(李文源)


1740년(영조 16) ~ 1794년(정조 18)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질(士質)이다. 1763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77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승지를 지냈으며, 1779년 대사간을 거쳐 이듬해 동래부사․경상감사로 승진되었다. 1781년 대사간․대사성을 지내고, 1784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후 공조판서, 여주목사, 이조판서, 형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등 여덟 차례나 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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