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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세계유산 = 11] 승정원 일기(承政院 日記)

1623년(인조1년)3월부터 1910년(융희4년)까지의 기록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02일

 

조선시대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왕명 출납(出納)과 제반 행정 사무, 의례사항을 기록한 일기이다. 승정원은 국왕의 비서실이다. 승정원 일기는 1623년(인조1) 3월부터 1910년(융희 4)까지 총 3천243책의 기록을 말한다.


조선이 세워진지 2백년이 되는 해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왔다(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통일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사들의 불만을 외침을 통해 해소토록 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었다. 대비가 없었던 조선은 수비선이 모두 무너져 국왕이 결국 한성을 포기하고 북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7년 동안 지속됐던 이 전쟁은 조선의 수군(水軍)과 의병(義兵), 그리고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끝이 났다. 그러나 조선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또 거의 전 국토가 황폐화되어 농경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조선의 도공(陶工)들과 문화재가 일본으로 약탈돼갔다. 이 전쟁은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을 일으켰던 국가인 일본에서는 정권이 바뀌어 도쿠가와 집안이 장군직을 세습하며 약 3백년 가까이 일본을 통치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가 망하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왕조가 유지되었지만, 한 세대가 지날 무렵에 다시 외부의 침략을 받아야 했다. 청이 쳐들어왔던 것이다(1636년 병자호란).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의 주서(注書)가 매일 작성하였다. 승정원의 직무는 왕명을 밑으로 전달하고 하의(下意 : 밑에서의 의견)를 왕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밖에 나라의 여러 공적인 일과 의례(儀禮)에 관련된 일을 담당했다. 승정원은 도승지(都承旨) 이하 승지와 하급관리인 주서(注書)로 이루어졌으며, ≪승정원일기≫의 기술은 주서의 소임이었다. 주서가 기록한 매일의 일기는 한 달 분씩 정리해 국왕에게 올려서 재가를 받았다. 임금에게 올리기 전에 일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한 달 분을 대개 한 책으로 엮었으며, 분량이 많을 경우에는 두 책으로 나누었다. 조선 전기의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고 말았다. 또 임진왜란 이후 1623년까지의 일기도 나중에 소실되었다.



 


일기의 내용은 국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데, 주로 국왕이 신하들에게 내린 글과 신하들이 국왕에게 올린 보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기재 방식을 보면, 한 달을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經筵)상황, 내전(內殿)의 동향을 기록하였다. 다음으로 승정원의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실태를 표시하고 마지막에 승정원의 업무현황, 왕 및 내전의 문안, 승정원의 인사관계(人事關係) 등의 내용을 실었다.


기간과 승정원 명칭 변경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623년부터 1894년 6월까지의 ≪승정원일기≫ 3,045책, 1894년 7월부터의 ≪승선원일기 承宣院日記≫ 4책, 1894년 10월부터의 ≪궁내부일기 宮內府日記≫ 5책, 1895년 4월부터의 ≪비서감일기 秘書監日記≫ 41책, ≪비서원일기 秘書院日記≫ 115책, 1907년 11월부터의 ≪규장각일기 奎章閣日記≫ 33책이다.


승정원일기의 의의는 먼저 내용의 방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25사(3,386책, 약 4,000만자)와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자)을 훨씬 능가하는 총 3,243책(글자수 2억4천250만자)로 세계 최대의 규모의 연대 기록물이다.


두 번째 의의는 사료로서의 가치이다. 조선왕조실록이 국왕 사후 사관들에 의해 편집된 2차 자료인 데 반해, 승정원일기는 당시의 사실을 대로 기록한 1차 사료이다.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도 승정원일기를 자료로써 이용하였다. 승정원일기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조선후기 한국사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이다. 또한 원본 1부밖에 남아 있지 않아 희소성을 갖춘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7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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