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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 = 68] 삼학사의 한사람 "윤 집 (尹 集)"

스스로 머리를 이고 왔으니 어서 내 머리를 끊거라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6월 21일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는  남한산성을 포위한 후 임금이 직접 성에서 나와 항복하고, 항전을 주장하던 대신들을 보내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최명길은 이미 청나라 진영에 잡혀 있는 홍익한 외에 척화(斥和)를 주장하던 대신들의 명단을 작성한 후, 혹 누락된 사람이 있으면 자수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신들이 두렵고 위축되어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때 윤집이 웃으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대장부로서 어찌 이름을 숨기랴."


그는 줄곧 항전을 주장해오던 오달제와 함께 청나라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였다. 이는 다른 대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윽고 윤집과 오달제가 청나라 진영으로 가기 위해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올렸다. 임금은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못난 과인을 임금으로 섬긴 죄 때문에 남한산성에 들어왔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소. 장차 내 마음을 어떻게 진정하랴. 그대들에게 부모와 처자들은 있는가?"


윤집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신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모두 남양(南陽)으로 갔습니다. 남양부사가 청나라 군사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세 아들의 생사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아, 참혹하고 가련한 일이로다. 그대들이 이곳을 떠나고 나면 장차 과인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행여 과인이 살아남는다면 그대들의 늙은 부모와 처자들을 마땅히 잘 돌 보아주리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리자 인조는 잠시 두 사람을 붙들어두고 내관으로 하여금 술을 대접하도록 했다. 그때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던 승지가 들어와 인조에게 아뢰었다.


"청나라 사신이 벌써 문 앞에 와서 재촉하고 있습니다."


인조가 서둘러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어찌 이렇듯 황망하게 독촉하느냐? 하늘도 무심하구나!"


임금은 울면서 두 사람의 소매를 붙들었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오!"


이윽고 두 사람은 인조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신이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니 조금도 한이 될 게 없습니다."


두 사람이 물러가자 인조는 문을 닫고 통곡하였다.


윤집과 오달제는 적진에 도착하여 곧 청나라로 압송되었다. 청나라에 도착하자 적장이 물었다.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한 사람이 너희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대신들의 이름을 대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윤집이 얼굴에 웃음을 띠고 적장에게 말했다.


"사내 대장부에게는 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오. 어찌 죽음이 두려워 다른 사람을 무고하게 끌어들여 죽음을 면하겠소? 처음 성을 나설 때 나는 이미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고, 죽을 자리를 찾았으니 두려울 바 없소. 스스로 내 머리를 이고 왔으니 자르려면 어서 내 머리를 끊고 다른 일은 묻지 마시오."


얼마 후 두 사람이 청나라 심양에 도착하자 황제가 말했다.


"너희가 처자를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거처하고자 한다면 살려주겠다. 그럴 생각이 있는가?"


청나라 황제의 물음에 윤집이 대답했다.


"나는 이미 조선의 신하가 되었으니 다른 나라의 신하가 될 수 없소. 결단코 그 말에 따르지 않을 것이오. 살아 있기 부끄러우니 모름지기 빨리 죽여주시오."


윤집과 오달제는 다시 감옥 안으로 향했다. 그때 윤집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데리고 온 종에게 말했다.


"오늘 오랑캐들이 반드시 우리를 죽일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종이 울면서 말했다.


"어째서 저들의 말을 따르지 않아 스스로 화를 재촉하십니까?"


"차라리 죽을지언정 몸을 굽히는 욕을 당할 수는 없다."


감옥 안에서도 윤집과 오달제는 태연자약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사도 여느 때처럼 잘하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인질로 잡혀 있다가 심양에서 숨을 거두었다.


윤 집 (尹 集)


1606년(선조 39) ~ 1637년(인조 15).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자는 성백(成伯). 호는 임계(林溪) 또는 고산(高山)이다. 1627년(인조 5) 생원이 되고, 1631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636년 교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이때 오달제 등과 함께 화친의 사신을 보내자고 주장하는 최명길의 목을 벨 것을 청하면서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자 오달제와 함께 청나라로 끌려갔다. 청나라에서 고문과 회유 등으로 그의 뜻을 돌리려 하였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심양성 서문 밖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삼학사(三學士)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하고 끝까지 항전을 주장한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한다. 1636년(인조 14) 12월 청 태종(淸太宗)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에 침입하여 남한산성을 포위했을 때, 조정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때 최명길  등은 청나라와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삼학사는 결사항전을 주장하였다. 1637년(인조 15) 1월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세 사람은 척화신(斥和臣)으로 지목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가 참형되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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