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유산해설사 이종훈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은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世宗)이 집현전(集賢殿) 학자들과 함께 만든 문자이다. 훈민정음의 공포와 동시에 정인지(鄭麟之)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하였다. 왕권의 안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난 후 태종은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이양했다. 새로 즉위한 왕이 곧 세종대왕이다. 세종이 통치하던 시대는 정치와 경제가 안정된 시대였고, 이 안정 위에서 문화의 꽃이 활짝 열렸던 시기였다.
세종은 즉위 이후 실생활과 관련된 과학 기술을 장려했다. 먼저 한국의 실정에 맞는 농업서적을 편찬하여 배포했다.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측우기(測雨器)와 해시계, 물시계, 천문관측기구도 만들게 했다. 특히 측우기의 발명은 서양보다 2백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천문 기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이들이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자들로 하여금 중국의 고전(古典)과 옛 제도를 연구하게 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룩한 업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었다.
세종은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이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1443년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으며 3년 후에 공포하였다. 이 책은 정인지 등 집현전의 8학자가 집필한 것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는 세종이 직접 지은 것이다. 그 내용은 새 문자를 창제한 목적을 밝힌 훈민정음 서문과, 새 문자 28자를 차례로 예시하고 설명한 다음에 이들을 결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예구로 되어 있다. 제2부는 학자들이 지은 본문에 대한 주석(註釋)이다. 그것은 새 문자의 제작원리를 설명한 제자해(製字解), 음절(音節) 두음(頭音)을 표기하는 자음 17자를 설명한 초성해(初聲解), 모음 11자를 설명한 중성해(中聲解), 음절말 지음을 설명한 종성해(終聲解), 초성․중성․종성이 결합하여 음절을 표기하는 방법을 설명한 합자해(合字解), 새 문자로서 단어를 표기한 예를 보인 용자례(用字例)의 6장으로 나뉜다. 끝에는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서문이 붙어있다.

훈민정음은 전체 분량이 본문 4장, 주석과 정인지의 서문 29장으로 된 33장에 지나지 않으나, 이론 전체가 정연하고 서술이 과학적인 책이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은 현대의 세계 언어학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후 정음청(正音廳)이라는 관청을 설치하여 한글로 된 노래를 짓도록 하고, 한글로 된 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조선 왕실 조상의 덕을 기리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부처를 찬양하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등은 그에 따라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훈민정음은 창제당시 28자로 오늘날에는 24자만 사용되는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문자체계이다. 자음 하나와 모음하나를 합치면 하나의 글자가 되고(가, 너, 도), 여기에 필요할 경우 받침을 붙인다(각, 널, 돔). 이렇게 하면 겨우 24개의 글자만으로도 거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어린이들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읽고 쓰기를 자유롭게 할 만큼 쉽다는 점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자에서 직접 영향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어 한 나라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나아가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도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훈민정음이 차지하는 의의는 크다. 훈민정음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쓰여졌다고 되어 있어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에서 1990년부터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뽑아 해마다 상을 주고 있다. 이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이다.
훈민정음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