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런던과 뉴욕에서는 뮤지컬 군데군데에 다른 작곡가의 곡을 삽입하는 것이 유행했었다. 제롬 컨(Jerome Kern, 1885˜1945)도 1910년대 초반까지 100여 곡에 달하는 노래를 작곡했는데 그중 수십 편이 다른 뮤지컬에 쓰였다. 특히 영국이나 유럽에서 수입된 뮤지컬들은 브로드웨이로 건너와서 많은 수정작업을 거쳤는데 특히 좋은 노래를 보강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제롬 컨은 바로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좋은 음악의 공급원이었다고 한다. 노래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던 1914년경에는 한 작품에 제롬 컨의 음악이 무려 8곡 이상이 덧붙여진 작품도 있었다. 영국에서 초연된 <유타에서 온 아가씨>가 바로 그 작품으로 브로드웨이로 넘어오며 대폭 수정이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덧붙여진 음악들은 메인 작곡가의 음악보다도 평가가 좋았고 인기도 높아 메인 작곡가의 지명도마저 높여주었다. 메인 작곡가의 음악보다 서브 작곡가의 음악이 주요음악으로 평가되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은 초창기 뮤지컬 코미디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 1895˜1960)는 어릴 적부터 부친에게 이끌려 보드빌 공연장에서 자주 공연관람을 했다. 이 때 받은 공연들의 충격과 환상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에게 평생 무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집안은 조부인 오스카 해머스타인 1세 때부터 극장 사업을 하던 부유한 가정이었다. 미국 극장 건축에 많은 공헌을 한 오스카 해머스타인 1세(Oscar Hammerstein I)는 생전에 11개의 극장을 만들었는데 맨하탄 오페라 하우스(Manhattan Opera House)를 비롯해서 영국의 런던 오페라 하우스(London Opera House)까지 평생을 극장 사업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인 윌리엄 해머스타인(William Hammerstein)도 가업을 이어받아 유명한 빅토리아 극장(Victoria Theatre)을 경영했는데 특히 그는 보드빌계의 혁신적인 프로듀서였으며 얼굴에 파이를 던져 웃음을 유발하는 "파이 인 더 페이스(pie-in-the-face)"라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창안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예술적 환경에서 자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인 감성을 키워나갔으며 그에게 무대는 바로 현실이었으며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1926년,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는 에드너 파비의 소설을 읽고 뮤지컬로 만들고 싶어했는데 제롬 컨과 함께 제작자 플로렌츠 지그펠드(Florenz Ziegfeld)를 끌어들였다. 당시 뮤지컬 코미디는 <쇼 보트>가 나오기 전까지 대본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소설을 각색한 대본은 당시로써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렇지만 오페라는 이미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하여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던 때였다. 예를 들면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토스카(Tosca, 1900)>는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의 사극 <라 토스카(La Tosca)>를 개작한 것이며 <나비부인 (Madam Butterfly, 1904)>의 대본은 J. L.롱의 소설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1926년은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가 초연된 해이기도 하다. <투란도트>는 기존의 푸치니의 오페라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인데 결말도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본도 <투란도테(Turandotte)>란 우화극에서 비롯되었는데 푸치니 사후에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제롬 컨이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연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었는지 밝혀진 바 없지만 푸치니의 유작의 성공과 때를 맞추어 진정한 음악극을 만들고 싶어했던 이들 두 사람의 열정은 다음 해에 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쇼 보트>의 성공 이후 제롬 컨은 다시 가벼운 오페레타나 보드빌 수준에 머무는 작품을 만들어냈을 뿐 오히려 퇴보하는 작품경향마저 보였다. 당시에 능력 있는 작곡가들이 그랬듯이 브로드웨이를 떠나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에 몰두했으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들의 편곡 정도로만 브로드웨이와 끈을 맺었다. 그렇지만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쇼 보트>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40년대에 이르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 1902˜1979)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명작들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남태평양(South Pacific, 1949)> <왕과 나(The King and I, 1951)>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59)> 등 뮤지컬 명작들의 주옥같은 가사들이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에 의해 탄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