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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 198] 「자린고비」와 「천석군(千石君)」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5월 10일

옛부터 자린고비에 대한 얘기는 수업이 많았다. 조기 한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맨밥을 한 술 떠먹고 짠 조기 한번 쳐다 보고 또 한술 밥 떠먹고 조기 한번 쳐다 보는게 자린고비의 밥먹는 식사법이라고들 하였다. 또 자린고비는 송화가루를 볕에 말리느라고 널었다가 파리가 덤비면 물을 끼얹어 파리를 쫒는게 자린고비라고들 하였다. 하루는 도깨비가 마을 사랑방에 놀러 갔다가 자린고비 김생원의 구두쇠 얘기를 들었다.

"내 머리 아픈 감투를 씌워 자린고리 김생원을 골탕 먹여줘야지..."


도깨비는 이렇게 마음먹고 김생원의 잠자는 정자에 찾아가 머리에다 두통 감투를 씌웠다.


"아이구~아이구~ 나 김생원 죽는다~머리가 뻐개진다~ 나 죽어"


김생원은 마을이 떠나갈듯 외쳤다. 잠시 뒤 김생원의 행동은 기상천외였다.


"얘 돌쇠야~ 마당쇠야~ 도끼를 갖고 오너라. 도끼를 갖고 와서 내 머리를 뻐개어라."


두통이 나면 약을 먹거나 굿을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떡 구경을 시킬 줄 알았던 도께비는 그만 질겁을 하고는 자린고비 김생원 머리에 씌운 두통감투를 얼른 베꼈다. "하나뿐인 도깨비 두통 감투가 도끼찜을 맞아 찢어지면..." 겁이 나서 감투를 벗긴 것이다.


"아 요것 봐라 귀신도 도깨비도 내 머리를 뻐갠다니까 겁나나 보지?" 그래서 자린고비 김생원은 도끼로 두통을 물리친 셈이었다.


그렇다면 포천의 자린고비 천석군(千石君)은 어떠했을까?


포천의 자린고비 천석군의 아들은 丁씨였는데 현청에 다녔더란다.


丁씨는 가죽신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신발을 신고 서 있다가는 다시 아무도 없으면 신을 벗어 들고 길을 걸었다고 한다.


하루는 함께 현청에 다니던 김생원이 새벽녘 丁씨(자린고비)집으로 조식전면담(朝食前 面談)을 하러 갔는데 마침 아침상이 들어 왔다.


"아침 밥 같이 먹세나."


"아니야, 집에 가서 먹지 뭐..."


자린고비 집을 나서던 김생원의 등 뒤 방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 왔다.


" 엑기 이 못 된 놈아 정말 먹으면 어떻게 할려고 아침밥을 먹으라고 권한단 말이냐? 응? 괫심한 놈... 다시는 위태로운 말일랑 말거라."


丁씨의 부친(자린고비)의 호령이었다. 이렇듯 포천의 자린고비 丁씨댁은 밥 한 끼도 남에게 안 대접하는 자린고비이자 천석군이었으며 사철 잡곡밥만 먹는 절약정신이 투철한 집안이었다 한다.


천석(千石)은 큰 부자의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확 품종과 농사법의 발달로 쉽게 수확할 수 있는 세상되었으니 꿈 같은 얘기이다. (丁씨 천석군댁이 어느 조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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