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영 대진대 교수, 연출가
보드빌과 레뷰를 포함해서 1927년 이전까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던 작품들 중 어느 것도 진정한 뮤지컬 코미디(Musical Comedy)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비록 조지 M. 코핸(George M. Cohan)이 1904년에 <리틀 조니 존스(Little Johnny Jones)>를 발표하여 미국 뮤지컬 코미디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대본에 문제점이 많았다. <리틀 조니 존스(Little Johnny Jones)>를 포함해서 오늘날 리바이벌 되는 작품들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당시의 작품들 모두가 줄거리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취약했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대본은 사장(死藏)되어 버리고 오늘날에는 노래만 살아남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노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틀 조니 존스(Little Johnny Jones)>라는 작품의 제목과 줄거리는 몰라도 ꡐ브로드웨이에 안부를 전해주오(Give My Regards to Broadway)"는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노래 가락일 것이다. 보드빌 시대에는, 적어도 1927년 이전까지는 노래와 춤과 코미디의 스타들의 시대였다. 앞서 살펴본 패니 브라이스(Fanny Brice)나 앨 졸슨(Al Jolson) 등 대형 스타들이 공연의 내용보다는 자신의 스타성을 과시하면서 무대를 압도했으며 브로드웨이를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도 대본보다는 스타들을 위해 노래를 작곡했다. 이것이 대본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끝은 유럽제일주의의 종말을 가져왔다. 전쟁 승전국인 미국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트렸다. 또한 1920년대의 재즈(Jazz)의 독특한 스타일 확립은 전 세계의 문화가 미국문화로 대체되는 현상을 가져왔고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목소리가 커졌다. 보드빌이나 레뷰 공연에서도 미국의 재즈가 본격적으로 무대음악으로 쓰이면서 유럽 무대에도 재즈와 결합한 다양한 뮤지컬의 시도를 가능케 했다. 재즈는 17세기 초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노예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흑인들은 유럽의 음악과 자신들의 음악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불렀고 1863년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공식적으로 흑인음악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재즈의 특성은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즉흥성에 있었는데 무대에 오르면서 즉흥성은 배제되었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재즈의 생기 있고 빠른 박자와 블루스(Blues)의 우울한 감정의 표현은 미국과 유럽의 백인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그 리듬이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재즈의 전신인 래그타임(Ragtime)이라는 것인데 1880년대부터 유행한 피아노 음악이었다. 래그타임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1868˜1917)을 들 수 있는데 폴 뉴먼(Paul Newman)과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주연한 영화 <스팅(The Sting, 1973)>의 주제곡인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는 스콧 조플린이 작곡한 대표적인 래그타임이다. 대중적으로는 1911년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알렉산더스 래그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라는 곡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래그타임은 당김음 즉, 싱코페이션(Syncopation)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즉흥연주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대음악으로 적합했다. 처음에 미국의 재즈는 보드빌과 벌레스크처럼 싸구려 술집과 매춘이 성행하는 곳에서 발전했다. 뉴올리언즈의 스토리빌(Storyville)은 공창(公娼) 허가 지구였으며 미국의 재즈 음악을 형성하는 근거지 역할을 했다. 전속음악가가 있을 정도로 191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후 재즈가 본격적인 무대음악으로 쓰이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어 나갔다.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래그타임의 유행과 재즈의 성장은 뮤지컬 코미디의 음악적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대본은 역시 탄탄한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 자기 자신이 극장이었으며 밴드였고 전 세계였다고 극찬을 받았던 영국의 작가 노엘 카워드(Noel Coward, 1899˜1973)도 <소용돌이 (The Vortex, 1924)>, <건초열 (Hay Fever, 1925)> 등 대표적인 연극작품들을 발표했지만 작곡가, 작사가, 배우로서의 노엘 카워드는 이때까지 레뷰나 보드빌을 뛰어넘는 진정한 뮤지컬 코미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