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사진,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인간의 행복과 욕망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물질적 욕망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물질적 행복을 성취한 많은 현대인들이 허무함에 생을 버리는 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물질적 성취를 위해서 사회적 개체적 정체성을 쉽게 변형시키거나 포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진정한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것이 행복을 발견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포천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자연을 잘 간직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후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포천은 산수가 뛰어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알려져 왔다. 주말이면 공해로 찌든 서울 같은 도회를 떠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이 간직되어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군사도시나 막걸리, 이동갈비라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브랜드가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붙어오긴 하였지만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맑은 공기와 산소 같은 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는 신선한 이미지가 포천을 정의하는 좋은 아이템이 되어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포천이 달라지고 있다. 영세 중소기업들이 값싼 공장부지를 찾아 들어와 맑은 물과 공기를 오염시켰고, 분지 형태의 포천은 숨막혀 가는 대기로 인해 각종 호흡기 질환이 심한 곳이 되어가고, 천변에는 맑은 물 대신에 염색공장과 가구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로 인해서 맑은 물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백운계곡 같은 깊은 계곡이나 가야 옛날의 정취를 찾아볼 수 있는 듯 하다.
행정가들의 눈에는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서 포천의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그로 인해 시(CITY)가 되고 그 것도 모자라 인구 수십만의 계획도시로 발전되는 것이 대단한 치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수자원공사가 추진하는 철원과 포천 일대에 홍수조절용 댐을 건설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환경과 생태의 파괴로 인한 포천의 자연적 재앙에는 관심도 없고, 엄청난 규모의 다목적 댐으로 전환하라고 부추기는 해괴한 운동을 벌이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이르렀다. 환경이라는 것은 파괴하는 데는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회복하는 데는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는 어려운 사업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단지 물질적 업적이라는 개발논리를 앞세워 수백, 수천의 세월 동안에 정착되어온 포천의 아름다운 산천과 사회적 정체성을 가볍게 물리친다는 것은 분명 신중치 못한 일이다.
셰익스피어의 "태풍"에서는 개발과 자연의 갈등구조가 드러나 있다. 섬의 원주민 캘리반은 섬의 정복자 프로스페로의 적대관계는 바로 노예상태에서 자유를 획득하려고 하는 피정복자의 정치적 저항의 형태로 나타난다. 캘리반은 스테파노가 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도취의 힘을 가진 스테파노를 이용해서 마술의 힘으로 섬을 정복한 프로스페로로 부터 자유를 획득하고자 한다. 그는 프로스페로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며 "다시는 생선을 잡지 않겠네/땔나무도 하지 않겠네/명령도 아랑곳하지 않겠네/쟁반도 안 닦고 접시도 씻지 않겠네/캘리번은 새 주인님을 만났으니--새 하인을 고용해야지/자유다, 만세다, 만세다, 자유다! "라고 외치며 자신의 이전에 즐기던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정복자 프로스페로에게 노예상태로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에어리얼이다. 그는 마술과 문명의 힘으로 섬을 지배하고 있는 프로스페로에게 생명을 구해주었다는 이유로 철저히 충성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상징하듯이 공기처럼 자유를 추구하는 비가시적 존재이다. 그는 섬이라는 자연이 천연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낙원의 상태로 보고자 한다. "비록 한 치 불로의 땅이라도 좋으니 망망대해와 바꾸고 싶고, 잡초가 마구 자라고 갈색 가시금작나무 따위가 무성한 황지라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개발이나 문명의 힘을 상징하는 프로스페로적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에어리얼이 추구하는 낙원은 물질과 정신이 공존하는 세계이며, 인간의 삶의 방식을 풀어가는 두개의 인자이다. 인간은 물질의 방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현상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정신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영적인 낙원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인자의 변증법적 작용에 의해서 인간의 행복이 이루지는 것은 종교적 차원이 아니고도 이해될 수 있다. 에어리얼의 주장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간직하는 것이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벌과 함께 꿀을 빨고/꽃송이 속에 누워/밤이면 부엉이 우는 소리 듣네./박쥐 등에 타고/여름을 따라가며 즐겁게 지나세/가지에 달린 꽃 그늘 밑에서/즐겁게 지나세."라고 노래한다. 그야말로 음풍농월하는 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인의 목가적 가치 추구가 진정한 행복을 획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행복과 욕망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물질적 욕망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물질적 행복을 성취한 많은 현대인들이 허무함에 생을 버리는 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물질적 성취를 위해서 사회적 개체적 정체성을 쉽게 변형시키거나 포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진정한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것이 행복을 발견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포천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자연을 잘 간직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후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