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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단체 탐방 1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 ]조선후기의 學者이자 義兵長 면암 최익현


김영복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3월 12일

"한 채의 儒林이 춥게 눈발에 젖어 있다"


 사진설명(인물화):도끼를 앞에 놓은 채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리는 면암 최익현-김호석 화백의 인물화



 



 사진설명(순국비):면암 최익현 선생 순국비. 장례를 치렀던 이즈하라의 수선사에 있음



 



면암학회(회장 김호성)는 2006년 11월 17일 청양군 문화예술회관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면암 선생의 민족정신과 현대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정동기 충청남도문화관광 국장, 김시환 청양군수, 면암학회 회원, 유림,주민 등 2백여명이 참석하여 면암 선생의 선비정신, 의병정신의 역사적 의의를 기렸다.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덕선양 사업을 통하여 포천인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우리 민족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애국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제반 사업은 물론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집, 전기, 동화 등을 통하여 정확히 후대에 알릴 수 있는 사업과 면암 최익현 선생의 생가복원, 기념관건설립 등 유적보존사업과 기타 목적에 관계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업목적과는 달리 실질적인 사업추진 성과는 청성공원에 면암 최익현 선생 동상 건립이 전부라고 해도 다름이 없다.


특히 지난해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역사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 생가터를 중심으로 역사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을 신청했으나 선정되지 못했다. 문화,역사마을 가꾸기 지원사업은 마을의 문화,역사적 소재를 발굴,육성하여 자생력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문화관광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며 대상마을로 선정되면 관광진흥개발기금 20억원, 지방비 10억원등 3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었으나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 자체적으로 사업을 마련하고 추진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본지는 포천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면악 최익현 선생은 누구인가? 이구상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장 인터뷰, 청양군에서 개최된 학술대회,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모시는 사우 현황 등을 보도함으로써 포천시와 포천시민이 면암 최익현 숭모사업에 관심을 갖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면암 최익현 선생은 누구인가 


 


올해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년) 선생의 서거 101주기를 맞았다. 음력으로 1906년11월17일에 돌아가셨다.


면암 선생은 을사조약 이후 1906년 항일 의병운동을 전개하다 일본군에 붙잡힌 뒤 일본 쓰시마(對馬)에 끌려가 단식을 하는 등 옥고 끝에 향년 74세의 나이로 순국한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난 면암 선생은 1855년(철종 6년)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사헌부, 사간원 등에서 일하며 불의와 부정을 척결하는데 앞장서는 등 강직한 선비로 관명을 날렸다.


면암 선생은 1868년(고종 5년)부터 경복궁 중건을 위한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해 재정 파탄을 가져왔다고 흥선대원군의 실정(失政)을 상소하는 등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고 퇴출을 주장, 결국 대원군이 실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면암 선생은 이 때문에 군부(君父)를 논박했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갔다 1875년 풀려난 뒤 이듬해는 조선이 일본과의 통상을 논의하자 불가하다는 상소를 올려 또다시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했다.


면암 선생은 1895년에는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이를 반대하다 다시 투옥됐고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후에는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교육에 나섰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고종의 밀지를 받은 뒤 왕의 자문에 나서기도 했으며, 일본으로부터의 차관(借款)금지 등을 상소하고 친일 매국노 처벌 등을 요구하다 두 차례나 일본 헌병에 의해 압송되기도 했다.


면암 선생은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하고 망국조약에 참여한 오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계기로 8도에 포고문을 내 항일투쟁을 호소하며 납세 거부, 철도 이용 안하기, 일체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 항일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74세의 고령의 나이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순창에서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일본 쓰시마로 붙잡혀가 5개월 만인 그 해 11월17일(음력) 옥사에서 단식하다 순국했다.


정부는 면암 선생에 대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저서로는 면암집40권, 속집 4권, 부록 4권 등이 있다.


면암 선생의 묘소는 충남 논산군 국도변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자 일본군들이 1910년 오지인 충남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산 21-1번지에 강제 이장했다고 한다.




인터뷰 이구상 면암최익현선생숭모사업회장



▶숭모사업회 설립 목적은?


▷면암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대들이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선양사업을 추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주요사업은?


▷청성공원에 세운 동상건립에 이어 만화 "민족운동의 선봉장 면암 최익현"을 제작하여 관내 학교와 유관기관에 배포했다. 면암 선생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예산부족으로 1천여권을 제작하는데 그쳤다. 최근 청양군에서 판권을 달라고 요청이 왔다. 청양군에서도 만화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50권을 보내주었다.


면암 최익현 선생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 지난해 예산 3천500만원을 세웠는데 집행이 안되고 명시이월되었다고 한다. 그 예산이 설계용역 예산인데 올해는 꼭 집행되었으면 좋겠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독립투사인데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삼일절 기념식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포천시가 삼일절 기념식을 개최하면서 면암최익현숭모사업회에는 연락도 하지 않아 어디에서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독립운동하시다 아사하신 그분의 뜻에 따라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포천시민대종을 타종한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기에 시민대종 종각으로 갔으나 사람들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여성회관에 차량이 많이 있다고 알려줘 가보니 그곳에서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가 나서 다시 돌아오려고 하다가 그래도 기념식은 끝나고 가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기념식만 마치고 돌아왔다. 포천시 공무원들의 생각을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다.


▶앞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은?


▷생가복원과 더불어 기념관 건립사업과 면암집 해설집 발간, 만화책 추가 발간 등을 추진하고 싶지만 예산이 없어서 난감하다. 회원들의 성금을 모금해서라도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포천시에 바라는 사항은?


▷면암 최익현 숭모사업회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 삼일절 기념식에 동네 이장까지 초대하면서 독립투사를 모시는 숭모사업회에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수 없다며 잘 챙겨 주었으면 좋겠다.


▶포천시민들께 바라는 사항은?


▷숭모사업회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훌륭한 정신을 가진 분을 자손들에게 알려주어 자손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했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포천시에 의존하지 않고 회원들 스스로가 성금을 걷어서 사업을 시작하겠다. 뜻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포천신문에 바라는 사항은?


▷면암최익현숭모사업회에서 하는 사업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주기를 기대한다. 알려서 스스로 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김영복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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