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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선비정신 56]신숙주를 원하십니까, 성삼문을 원하십니까?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2월 28일

한국한시협회 포천지회장  리 효종

유성룡은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다. 오랫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으나 청빈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스무 살 즈음 그는 관악산의 한 절에 들어가 책을 읽었는데, 그가 머물고 있던 암자는 외진 곳에 있었다. 그는 데리고 간 어린 종에게 식사를 끓이게 하고는 밤낮으로 글만 읽었다.


어느 날 밤,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유성룡은 못 들은 척하고 책만 읽었다. 이튿날 그 암자의 승려가 유성룡에게 말하였다.


"깊은 산중에서 도적이 무섭지 않소?"


사실 그 승려가 유성룡을 시험하고자 어젯밤 도적 복장을 하고 벽을 두드렸던 것이다. 유성룡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세상에 도적이 하도 많으니 당신도 도적이 아닌 줄 어찌 알겠소?"


명종이 즉위한 직후 윤해평(尹海平)이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을 세상에 반포하기를 청하였다. 『육신전』은 단종 복위를 시도한 사육신의 언행과 절개를 기록한 것이었다. 당시의 선비들은 사육신이 충신(忠臣)인지 역신(逆臣)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특히 임금의 입장에서 보면 세조에게 반역을 일으킨 사육신이 충신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단종에게는 충신이었지만 세조에게는 역신이었던 것이다.


윤해평의 말을 들은 명종은 몹시 화를 내며 그를 밖으로 끌어내라고 명하였다.


훗날 선조가 즉위한 후 율곡 이이가 다시 『육신전』을 세상에 반포하자고 청하였다. 하지만 선조 역시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앞으로 집에 『육신전』을 간직하고 있는 자는 모두 반역죄로 다스리겠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하는데 유성룡이 문득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나라에서 장차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전하께서는 신들이 신숙주 같은 신하가 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성삼문 같은 신하가 되는 게 좋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선조는 이내 화를 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난할 때였다. 왜적이 가까이 다가오자 어떤 사관(史官)이 궁궐에 있던 역사 기록들을 모두 불태우고 달아났다. 그후 유성룡은 국정을 담당하면서 그 사관을 두 번 다시 조정에 세우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사관이 중국으로 가는 서장관(書狀官)에 추천되었는데, 그때 선조는 그 사관의 이름을 지우며 말했다.


"이자는 사서(史書)를 불태우고 임금을 버린 채 도망갔던 자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도중 도망칠지도 모르니 다른 사람을 천거하라."




유성룡(柳成龍)


1542년(중종37) ~ 1607년(선조40).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1564년(명종19) 생원 및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한 후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80년 부제학에 올랐으며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대사성, 경상도 관찰사,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590년 우의정으로 승진하여 이조판서를 겸직하고 이어 좌의정에 올라서도 이조판서를 겸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하였다. 영의정이 되어 왕을 호종하였으나 나라를 망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그러나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고, 이듬해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 후 파주까지 진격하였다. 그해 다시 영의정에 올라 전란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복구사업에 전념하였다.


1598년 북인들의 탄핵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1600년에 복관되었으나 다시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학문과 문장, 글씨는 물론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 『서애집(西厓集)』,『징비록(懲毖錄)』등 여러 권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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