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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의 플러스에세이 34] 뉴욕에 뿌린 45년의 씨앗과 그 궤적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26일
< 뉴욕 서정덕 대표 >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의 길목, 뉴욕에서 날아온 친구의 편지 한 장을 마음에 담았다. 꾹꾹 눌러쓴 글씨 속에는 45년 전 단돈 30달러를 쥐고 미국으로 건너가 롤러코스터 같은 세월을 버텨낸 친구의 고단하고도 치열했던 일생이 담겨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가 홀로 감내해야 했던 타향의 찬 바람과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마저 잊고 살았던 세월의 무게가 가슴 깊이 전해져 아련한 먹먹함을 느꼈다. 이제 일흔이라는 인생의 언덕에 서서 고향 땅과 옛 친구들을 향해 담담히 그리움을 전해온 그의 고백은 뉴욕이라는 땅에 땀과 눈물로 숭고한 씨앗을 뿌려온 45년 궤적을 삼가 고요한 마음으로 기록해 본다.

1982년, 뉴욕 제이에프케이(JFK) 공항의 문이 열렸을 때 친구의 손에 쥐어진 전 재산은 단돈 30달러였다. 가난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결연히 고국을 떠나왔지만, 낯선 이국땅의 첫 공기는 차갑고 막막하기만 했다. 한국에서 국립00기계공고 1회 배관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해 카투사(KATUSA)로 근무했던 경험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군에서 익힌 약간의 의사소통 능력이 사막 같은 타향에서 그의 유일한 오아시스이자 생존 무기였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친구에게 미국에서의 첫 직장은 조그만 꽃가게였다. 매일 새벽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꽃의 종류를 익히고 시들지 않게 관리하는 법을 배우면서 도매시장에서 손님에게 건네지기까지의 유통 과정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비록 남의 가게에서 일하는 고단한 신세였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새벽이슬을 머금은 꽃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몇 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는 담대하게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새벽 일찍 도매시장에 나가 싱싱한 꽃을 사들인 뒤, 조그만 차에 싣고 뉴욕 시내의 꽃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발품을 팔아 번 돈을 푼푼이 모아 마침내 맨해튼 28가 도매시장에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시작하던 날,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감격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의 진짜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시장 바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꽃을 팔았고, 해가 저물면 피곤함에 지친 몸을 이끌고 대학 강의실로 달려갔다. 하루에 두세 시간 남짓 자며 일과 학업을 병행했지만, 청춘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피곤함조차 사치였다. 오직 제힘으로 일어서겠다는 투지와 야망이 그를 버티게 한 에너지였다.

서른을 넘겨 가정을 이루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친구 부부에게 찾아온 첫 번째 선물인 아들 제임스(James)의 탄생은 그에게 ‘부모’라는 엄숙한 명찰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3년 뒤, 두 번째 선물인 딸 제인(Jane)이가 태어나면서 가정은 비로소 완전한 행복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아이들의 작고 고운 손을 잡을 때마다 친구는 마음속으로 깊이 다짐하곤 했다. “내가 한국에서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그 눈물과 고생만큼은 절대로 이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리라.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리라.”

경제적으로도 차츰 기틀이 잡히고 생활이 안정되어 가자 친구는 아이들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두기 위해 뉴욕에서 학군이 가장 좋다는 동네를 찾아 이사를 했다. 훗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이사를 와 한 마을 이웃으로 살게 되었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네였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피와 땀을 양분 삼아 곧고 바르게 자라주었다. 아들 제임스(James)는 대학 입학 학력고사(SAT)에서 만점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했고, 딸 제인(Jane) 역시 초등학교 시절엔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당당히 명문대에 입학했다.

두 아이 모두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증권회사에서 아들이 근무하고, 딸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핵심 인재로 일하고 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각자에게 집 한 채와 차 한 대씩을 안겨주었을 때의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청춘을 바쳐 일군 터전 위에서 결실을 본 아이들의 성장은 친구 인생의 최고 작품이자 훈장이었다. 

인생이란 결코 순탄한 대로만 내어주지 않는 법이다. 80년대 중반, 그는 사업의 스펙트럼을 넓혀 24시간 영업하는 슈퍼마켓 사업에 도전했다. 1호점을 시작으로 2호점, 3호점까지 매장을 늘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매장은 위험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우범지역의 매장들을 관리하기 위해 그는 허리춤에 권총을 휴대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때로는 인종 간의 갈등과 마찰에 휘말려 경찰서를 수없이 드나들며 조사받는 치욕과 공포를 겪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중간에 사업 확장을 위해 투자했던 다른 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아 경제적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었고, 사람을 잘못 믿은 탓에 연방검찰청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창밖을 보며 눈물을 삼켰고, 이민자의 삶이 가진 외로움과 서러움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그의 45년 이민 생활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정상에 올랐다 싶으면 급경사로 떨어지고, 먹구름이 걷혔다 싶으면 풍랑이 몰아쳤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거친 미국 사회의 바닥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하며, 그는 농산물 도매업체와 슈퍼마켓을 다시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바람 사나운 세월을 지나 이제 그는 일흔이라는 나이의 언덕에 서 있다. 요즘의 그는 오랜 시간 품어왔던 짐들을 하나씩 정돈하는 삶의 ‘비움’을 실천하고 있다. 

나름대로 코로나19 이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포 한인들을 위해 작게나마 봉사하며 이웃의 손을 잡고 있다. 얼마 전 연금을 신청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작은 결정을 실행에 옮겼다. 연금의 일정 부분을 뉴욕 주정부에 기부하기로 서명한 것이다. 단돈 30달러를 들고 찾아온 이방인에게 터전을 내어주고, 아이들을 번듯하게 키워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이 사회에 대해 작으나마 감사와 보답의 표시였다.   
 
친구는 모든 것을 바쳐 달려온 삶이었다. 자식들에게는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었고, 세상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돈되어 가는 지금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헛헛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과 성공해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자신을 돌보고 사랑해 줄 여유가 없었던 그 세월이 못내 아쉽다. 

어느 날 갑자기 뉴욕의 하늘을 바라보면, 젊은 날 가난이 싫어 떠나왔던 고향의 흙냄새와 함께 국립00기계공고의 교정을 누비던 옛 친구들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를때면 국내에 있는 동창들의 단체 카톡방에 안부를 전한다. 또한 친구는 멀리 뉴욕에 살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우리 동창들의 기쁨이 있는 곳엔, 늘 친구의 화환이 서 있었고, 슬픔이 있는 곳엔 애도의 뜻을 표하는 꽃(弔花)이 있었다. 아울러 카톡방에 있는 친구들이 여행을 간다거나 화합의 한마당을 할 때면 언제나 1,000달러의 찬조금을 투척했다.

친구의 마음 편지를 내 가슴속에 깊이 새기며 멀리 타국에서 외로이 삶을 정돈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본다. 앞만 보며 달렸던 45년, 나 자신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웠을 그 거친 이민의 땅에서 그는 당당히 뿌리를 내렸고 차고 넘치는 결실을 거두었다. 스스로는 자신을 위한 삶이 없었다며 아쉬워하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평안을 선물하고 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며 세월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인간의 완성일 것이다.   

가을날의 나무가 피워냈던 잎을 다 떨구고 굳건한 나이테로 남아 겨울을 맞이하듯, 친구가 뉴욕 땅에 뿌린 45년의 씨앗은 이미 위대한 나이테가 되어 빛나고 있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그에게 멀리서나마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건네고 싶다.
"고생 많았네, 내 친구 서정덕“
“자네의 인생은 그 자체로 이미 찬란하게 빛나는 명품이네.”
 
< 김종걸 / 수필작가 >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 공모전 우수상 수상.(2021)
제6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공모전 동상 수상.(2025)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 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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