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종병기 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계산하느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이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관련 발언과 사과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언론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말은 가볍지 않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공무원을 향한 표현이라면 더욱 그렇다. 재정 부담을 설명하려는 취지가 있었다 해도, 그 말이 현장에서 위험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과의 표현과 태도 역시 책임의 일부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의 말에 집중하느라, 그 말이 드러낸 사회의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은 직선으로 달리고, 문제는 곡선으로 얽혀 있다.
언론은 사건을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왜 논란이 되었는지, 누가 비판하고 누가 반박하는지. 이것은 사실을 전달하는 직선의 생각이다.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직선은 사건의 시작과 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곡선의 생각은 그 사건이 지나온 경로와 서로 얽힌 관계를 살핀다.
소방공무원의 업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지만, 그 인력과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구조 안에서 다뤄진다. 재난은 행정구역을 가려 발생하지 않지만, 재난을 대비하는 예산과 자원은 여러 행정 단위에 나뉘어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발언의 적절성을 따지는 데서 멈출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비용은 누가, 어떤 원칙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과 지방이 감당해야 할 영역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지역의 재정 여건에 따라 국민의 안전에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야말로 논란이 지나간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질문이다. 활을 쏘는 사람은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최종병기 활》의 대사는 바람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바람을 읽되, 바람에 갇히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활을 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생각이 필요하다.
첫째, 직선의 생각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읽고, 사실을 확인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짚어야 한다. 공직자의 부적절한 표현에 책임을 묻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둘째, 곡선의 생각이다.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지 않는다. 활과 화살, 사람의 움직임, 주변의 지형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발언 뒤에는 제도와 예산, 조직과 관계, 오랫동안 미뤄온 과제가 얽혀 있다.
셋째, 극복의 생각이다. 바람을 분석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바람 속에서도 과녁에 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잘못된 말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동시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과녁을 잃을 수 있다. 소방은 소방관만의 일이 아니다 산불과 대형 화재를 떠올려 보자. 재난이 발생하면 소방관은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재난을 줄이는 일은 현장에 도착한 뒤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미리 발견하는 주민의 눈, 안전을 배우는 학교, 취약한 이웃을 살피는 공동체, 지역의 위험을 알고 대비하는 행정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재난 대응은 소방관의 헌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방과 교육, 지역공동체의 참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연결되어야 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언론은 잘못된 발언을 드러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그 발언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를 추적하고, 해결의 방향까지 질문해야 한다. 논란의 크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사과가 진정성 있는지 묻는 일과 소방 재정의 책임 구조를 따지는 일은 서로 다른 질문이 아니다. 하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사회의 책임에 관한 문제다.
논란이 지나간 자리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발언은 한순간에 나온다. 언론은 그 순간을 제목으로 붙잡는다. 그러나 사과 뒤에도 존엄과 상처는 남고, 제도는 그대로 남을 수 있다. 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은 이미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문제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같은 조건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나는 추미애 지사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어느 한쪽의 정치적 승패보다 더 오래 남을 질문을 생각한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비용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위험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언론은 오늘의 논란을 보도한 뒤, 내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더 묻고 있는가.
바람은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계산만으로 바람을 멈출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바람을 읽는 정확성과 바람을 견디는 기술, 그리고 바람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판단이다. 언론에도 활이 필요하다. 사실을 겨누는 직선의 활, 맥락을 읽는 곡선의 활,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극복의 활이다.
소란은 잠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소란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까지 잠시여서는 안 된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사회가 아니라, 바람이 불어도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 나는 그것이 이번 논란을 통해 우리가 함께 겨눠야 할 과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