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 AI시대를 사는 우리는 손안의 세상에서 쏟아지는 많은 말들을 들으며 산다. 그런데 정작 서로를 향한 이해는 얕아져 옳은 말도 때와 자리를 잃으면 칼날이 되기도한다. 상대를 제압하려 내는 큰 목소리보다 필요한 건 깊은 경청과 따뜻한 여백이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손안의 화면을 켜기만 해도 수많은 주장과 판단, 쏟아지는 댓글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누구나 손쉽게 말하고 어디서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디어 시대가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말이 풍요로워진 만큼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타인과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지고,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외로움은 가중되고 있다.
노자는 일찍이 『도덕경』에서 "아는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정작 깊이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고 했다. 이는 입을 닫으라는 엄숙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입밖으로 내뱉기 전에 먼저 상대를 살피고, 단정 짓기 전에 한 번 더 침착하게 생각하라는 삼가의 경계다.
살아갈수록 말 한마디가 가진 무거운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구원의 동력이 되지만, 벼려지지 않은 말은 때로 가슴 깊은 곳에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젊은 날에는 마땅히 옳은 말을 똑부러지게 내뱉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주는 지혜는 전혀 다른 답을 보여준다. 아무리 바르고 정확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쓰여야 할 때와 자리를 잃으면 타인의 삶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뿐이다.
요즘의 사회는 너무 급하다. 짧은 글귀 하나, 찰나의 영상, 혹은 단편적인 말 한마디로 타인의 삶 전체를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구획 짓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사정이란 겉으로 드러난 표면보다 늘 깊고 복잡한 법이다. 겉으로 드러난 말 뒤편에는 그가 홀로 견뎌온 세월의 무게가 있고, 차마 말해지지 않은 마음속에는 꺼내놓지 못한 저마다의 고단한 형편이 숨어 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말에 무조건 동의함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저 사람만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이며, ‘내 판단 또한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이다. 일단 끝까지 들어보겠다는 그 작은 내면의 여백에서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유창하게 말하는 이들은 도처에 흔하지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 끝까지 조용히 들어주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웅변하는 목소리는 드높지만, 타인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주는 따뜻한 심성은 갈수록 귀하다.
성숙한 사회의 척도는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비판에 앞서 사정을 먼저 헤아리고, 단정하기 전에 한 번 더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여유가 있는 사회가 참으로 성숙한 곳이다.
말의 양은 조금 줄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빈자리에 사람을 향한 이해와 존중이 더 깊게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압도할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기울이는 깊은 경청의 자세다. 결국 단절된 인간관계를 따스하게 이어주는 힘은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