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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야기 2] 보드빌(Vaudeville), 레뷰(Revue) 그리고 악극단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1월 22일


윤우영 (사진․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 몇 년 전에 60-70년대식 버라이어티 쇼가 서울에서 공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지방순회 공연까지 매진사례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은방울 자매를 비롯해 흘러간 가수들이ꡐ홍도야 우지마라ꡑ, ꡐ애수의 소야곡ꡑ,ꡐ마포종점ꡑ 등을 들려주었고 송해, 배연정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들도 출연하여 노래 막간에 만담과 장기자랑 등을  보여주었다. 효도 상품으로 기획된 이 쇼는 한국에서 60년대 말까지 인기 있었던 악극단 공연을 재현한 것이었다.


악극의 형식은 이미 193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본격적인 악극단은 해방 전후에 생겨나서 가수들의 노래를 주축으로 변사나 삐에로 같은 배우들의 짧은 코미디나 만담 혹은 장기자랑 등을 엮어 1960년대 말까지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이 공연도 노래와 춤 그리고 코미디 등이 서로 연관 없이 나열되어 진행되었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양적 개념의 보드빌(Vaudeville)이나 레뷰(Revue)와 매우 유사하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대중 오락극은 정극인 멜로드라마(Melodrama)와 뮤지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보드빌과 레뷰였다. 보드빌과 레뷰는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 가수들이 흑인 노예들의 삶을 풍자한 대규모 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노래와 춤 그리고 시사 풍자적이며 해학적인 촌극 등을 엮었다는 점에서 서로가 매우 유사하지만 본격적인 뮤지컬과는 달리 줄거리가 없으며 단지 레뷰는 주제가 있다는 점에서 주제가 없는 보드빌과 구별되어진다. (최근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 러브 유 (원제: 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도 뮤지컬 레뷰 형식이다) 벌레스크(Burlesque)는 보드빌(영국에서는 버라이어티 쇼로 지칭) 등을 공연할 때 막간에 끼워 넣는 해학촌극으로 미국에서는 19세기 후반에 격이 낮은 통속적인 희극과 무희와 코러스 걸들의 쇼를 합친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20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한편으로는 스트립쇼로 변질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인기를 모았던 보드빌과 레뷰는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인 뮤지컬 <재즈 싱어(Jazz Singer)>를 기점으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더욱이 경제공황이 시작되면서 많은 음악가와 배우들이 브로드웨이를 떠나 경제적으로 더 풍족했던 헐리우드로 진출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텔레비전이 급속히 보급되자 클럽이나 캬바레 등에서만 일부 이들의 공연양식을 차용할 뿐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을 머금게 했던 구봉서, ꡐ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ꡑ로 유명했던 서영춘 그리고 배삼룡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 대부분이 50년대부터 악극단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고 1960년대 초반 텔레비전 방송국 개국으로 코미디언실 1세대로 자리 잡았다. 이후 악극단은 1960년 중반부터 본격적인 뮤지컬에 밀려 급속히 사라져 갔다.


본격적인 뮤지컬이 시작되기 전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전파된 또 다른 공연 형식 중에 하나가 바로 <뮤직홀(Music Hall)>이다. 대부분의 무성영화 희극배우들이 이곳을 거쳐 갔는데 보드빌로 알려지기 시작한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과 함께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마도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일 것이다. 뮤직홀은 원래 노래와 춤 등의 쇼를 즐기는 장소의 개념이지만 아크로바틱(곡예)과 마술 등이 첨가된 하나의 커다란 공연형식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유행했던 멜로드라마(Melodrama)와 함께 뮤직홀은 거대한 전문적인 공연장을 갖추었는데 역시 영화의 출연으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레코드의 발매와 유성영화의 시작은 뮤직홀의 종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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