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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여, 시저의 죽음을 어찌할까

박정근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2월 05일

안토니우스여, 시저의 죽음을 어찌할까
박정근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안토니어스여, 그대는 황제로 군림하고자 했던 시저의 주검 앞에서 어찌할 것인가. 로마의 영광을 위해 사지를 뚫고 승리를 일구어온 영웅이 어찌 힘없이 나둥그러져 있는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보상이다. 로마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시저를 살해했다는 서슬이 퍼런 부루투스와 다른 원로원들 앞에서 시저의 심복이었던 안토니는 시저의 시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아, 위대하신 시저! 이렇게 비참한 꼴로 쓰러져 계시구려?  당신의 모든 정복. 영광. 전승. 전리품들은 이렇게 작게 오그라들어 버렸소? 명복을 빕니다..”  부루투스의 연설과 더불어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명 연설가의 하나로 손꼽히는 안토니우스는 혁명을 일으켜서 자신의 최대의 후원자인 시저를 살해한 자들 앞에서 그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을 표한다.  부루투스를 위시한 혁명가들의 칼날이 언제 자신의 가슴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용기 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안토니는 시저의 시체 앞에서 그들의 칼날에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밝히지만 그건 매우 계산적인 속셈이 숨어있다. 적어도 명분 없는 살인을 저지를 자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의 혁명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애쓰리라는 것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안토니우스는 적들의 손을 잡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행위로 말미암아 불러일으킬 자신에 대한 신망이 위태로울 것에 대비해서 또 한 번의 연기를 한다. “아 시저여, 당신의 유해 앞에서 당신의 안토니우스가 당세의 소위 가장 고결하다는 원수들의 피 묻은 손가락을 쥐고 화해를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당신이 입은 상처자국의 수만큼 내게 눈이 있어서 그 상처에서 피가 분출한 만큼 내가 울어야 옳을 것을. 당신의 적과 우정을 맺어야 하다니오, 용서해주시오, 줄리어스.  용감한 수사슴같이, 당신은 이곳에 몰려, 이곳에 쓰러졌소. 그리고 사냥꾼들은 여기 서 있소, 살육의 증거로, 당신의 황천길의 피에 물들인 채, 아 세계여, 너는 이 사슴이 사는 숲이었다, 그리고 이 사슴은, 아 세계여, 너의 염통이었다. 귀인들의 무리한테 사살된 사슴같이 당신은 여기 쓰려져 있구려!”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이런 뼈있는 말을 던질 수 없다. 한 손은 화해의 악수를 던지면서, 입으로는 시저에 대한 조의를 표하며, 수려한 변명을 늘어놓는 안토니어스는 분명 대단한 줄타기를 하는 정치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발언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것을 보고, 부루투스는 시민들 앞에서 행할 연설에서 절대로 자신들을 비난하지 말 것과 그의 추도사 후에 연설의 기회를 허락받는다. 그는 시저의 시체 곁에 홀로 남아 살육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수를 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빌고, 앞으로 로마를 휩쓸 골육상쟁의 내란에 대해서 한탄한다. 시저의 살육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무기 삼아 적당히 무마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목적이 합당하더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못할 때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연단에 올라간 앤토니우스는 부루투스와 약속한 대로 그들에 대해서 험담을 않겠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부루투스가 ‘고결한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칭찬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시저를 살해한 명분인 ‘야심’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음을 밝힌다. 그는 관중들에게 시저가  전승으로 생긴 수많은 노예를 로마로 데려와 몸값으로 로마 국고를 늘린 것이 야심이냐고 반문하며 류퍼컬 축제 때 자신이 바친 왕관을 세 번이나 물리쳤던 일을 상기시킨다. “빈민이 울면, 시저도 울었소. 야심이란 그보다는 냉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부루투스는 시저가 야심가라는 거요. 그런데 부루투스는 고결한 분이오. 여러분도 다들 보셨겠지만, 지난 류퍼컬 축제 때 내가 세 번이나 왕관을 바쳤는데., 시저는 세 번 다 물리쳤소. 과연 이것이 야심이었소?  허나 부투투스는 시저가 야심을 품었다는 거요. 물론 부루투스는 공명 정대한 분이오. 그런데 지금은 무슨 이유 때문에 시저를 애도하기를 망설이는 가요? 아, 이제 분별은 짐승한테로 도망가 버리고, 인간은 이성을 잃어버렸단 말인가”라고 외친다. 군중들은 안토니의 말을 들어보니 도대체 시저가 무슨 야심이 있었는가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토니는 부루투스와의 약속대로 그를 결코 비방하지 않으면서도 시저가 야심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어서는 아니 되는 사람으로 충분히 인식하게 유도한다. 이제 오히려 군중들은 오히려 국가적 영웅을 살해한 부루투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몰려간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군중들은 정치가들의 말에 의해서 조종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들의 말의 바람에 따라 갈대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셰익스피어는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기 줏대 없이 상황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때론 폭도로 변해서 정치가들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행동대원으로 전락하는 군중들이 과연 부루투스가 자신의 시저살해의 명분인 로마 민주주의를 지킬 주체적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로마의 민주주의는 단지 귀족이나 상류계층만을 위한 지배이념이 아니었을까. 요즈음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려 싸웠던 진보적 운동가들에 대해 동정하고 심지어 국가운영에 일익을 담당하도록 선량으로 뽑아주었던 용감한 시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삼팔육이라는 운동권들이 청와대의 핵심으로 국회의 핵심세력으로 성장하였으니, 가히 한국사회가 극우보수세력에서 진보세력으로 판도가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몇몇 실정으로 인해 다시 시민들의 입에서는 독재세력에게 퍼부었던 독설이 밥상에 오르듯이 회자되고 있는 실정을 접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제 시민들은 누구의 말에 놀아나는 세력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역사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때서야 비로소 지배자의 노예나 추종세력이 아닌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진정한 주체요, 원동력으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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