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 속에서 BC 37년 개국하여 AD 668년까지 28명의 황제, 70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 중북부와 만주전역을 근거지로 하여 연해주(沿海州) 지역, 중국 하북성(河北省)과 산동성(山東省), 북경 인근까지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고대 제국(帝國) 고구려, 고조선의 정통성을 이으며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세운 제국, 우리의 진취적 용맹이 서린 가슴 벅찬 역사 속 고귀한 제국이 고구려이다.
이 숭고한 고구려에 관하여 교활하고 무엄하게도 후에 닥쳐올 일에 대한 포석으로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 책략으로 국책기관 주도 하에 고구려를 자신의 변방 역사로 치부하려는 심각한 역사 변조 사건이 중국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논리를 정확히 대변하는‘광명일보(光明日報)’에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에 있던 변방민족의 왕조였다"는 내용의 글이 실렸다.
이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상황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東北邊境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인 말이다.
이는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으로 1983년 중국변방의 역사연구 목적으로 설립되어서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꾸준히 마련해 왔으며 북한의 고구려 고분을 UNESCO 등록과 더불어 동북 3성 지역을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저의는 중국이 고조선(古朝鮮), 부여(夫餘), 발해(渤海)의 역사를 통째로 중국의 역사로 흡수하려고 하려는 음모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고구려는 중국 변방 민족정권’은 중국이 그동안의 경제적 성과에서 얻은 자신감을 통해 한국을 서서히 무시해도 괜찮다는 과거 중화사상의 민족성(民族性)이 표출되는 심히 무례한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입장에서 본다면 사실 역사상 고구려에게 치욕적인 패전(고수전쟁, 고당전쟁 등)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 대해 힘의 우위를 점해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은 한나라(漢), 당나라(唐), 송나라(宋), 명나라(淸)등과 짧은 기간 지속하다 멸망해간 수십 개의 군소 한족(漢族) 국가가 1,000년 남짓 중원(中原)을 지배했을 뿐 나머지 기간은 이민족인 몽골족의 원나라(元), 만주족의 청나라(淸), 요나라(遼), 금나라(金), 그리고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중원을 지배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중원의 역사가 이민족(異民族)의 역사’였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족의 입장에서는 오랑캐의 나라가 중원을 지배할 수 없다는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갖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행위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아전인수적 오만한 민족성이다.
이런 건방지고 음흉한 생각으로 역사를 도적질하려는 피할 수 없는 다른 이유는 북한정권의 갑작스런 붕괴시 한반도에‘통일’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건설된다면, 한반도의 4분의 1 크기(4만3547㎢)에 200만 인구를 가진 연변 조선족자치주가 동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장(西藏)자치구에 있는 티베트인과 신장(新疆·위구르)지구에 있는 회교도들도 술렁거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원래 중국사의 일부였다고 미리 강조하여서 북한의 붕괴시에 다가올 조선족의 동요를 차단하려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접근하면 한마디로 국제법상 ‘간도협약’에 관한 문제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한반도통일 이후 한·중 국경 및 영토문제에 있어 중국이 동북 3성이 자기들 영토라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급조된 ‘억지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첫째 중국과 고구려는 원래 한나라였다며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와 벌인 싸움을‘이민족 정복전쟁’이 아닌‘통일전쟁’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어 같은 민족인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상대를 흡수하려고 벌이는 전쟁은‘통일전쟁’이라 하고 이민족을 흡수하려는 전쟁은‘정복전쟁’이라 하는데 이 주장은 정복과 통일을 혼동시키고 있다.
두번째 왕건이 세운 고려는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당나라가 통일전쟁의 성공으로 고구려는 중국으로 흡수 됐고 한반도에서 고구려의 후손임을 주장한 왕건이 고려를 세움으로써 고구려사를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를 고구려는 중국역사서에 고려로 나오는데 왕건이 이를 도용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명나라 황제는 이성계를 조선왕에 책봉함으로써 조선이라는 국호를 하사하였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고대중국이 주변 국가들에 적용하려 했던 “천하관념(天下觀念)”이 한반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많은 주변 국가들을 모두 통합 흡수하였으나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 한반도에서는 강인한 민족정신과 저항에 부닥쳐 유일하게 성공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건국되기 이전에 중원을 지배했던 단군조선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들 변방의 역사였다고 날조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총리를 지냈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1963년 한민족이 중국 동북부에서 거주해온 역사를 인정하면서 반대하던 일부 학자들의 국수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발해가 조선민족의 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인들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도 중국의 현행 교과서에는 고구려를‘외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용 중국고대사 지도에도 한반도 안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를 함께 표시했고 만주의 일부 지방까지 포함한 한반도 영토와 수나라 사이에 굵은 선을 그어 국가간 경계를 표시했다.
아무리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려해도 손바닥 하나로 역사적 사실은 가릴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구려역사를 지키는 것은 우리민족의 민족혼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지 불과 12년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어 현실적으로 민족의 북방사를 연구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때에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하고 일본은 교활하게도 발해사를 중국사에 넣어 고구려역사를 중국과 한국 양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눈만 뜨면 이견에 부닥치고 서로 자신만의 주장으로 정쟁(政爭)을 한다.
중국에는 수출이 많고 일본에는 수입이 많으니 경제적 실리를 위해서는 조용하게 대처한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조상을 팔면서까지 미흡한 대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이다.
동쪽 바다 건너에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생떼를 쓰고, 서해바다 건너에선 중국이 우리 선조의 역사를 도둑질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선조들의 위기 대처를 배워야 한다.
우리조상들은 국가적 위기나 기근이 들 때는 모든 정쟁을 접고 마음을 모아 위기에 온힘을 모아 대처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래서 고구려역사를 지키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역사를 지키는 일에는 파벌이 따로 없고 남녀노소가 있을 수 없다.
어떤 희생이 오더라도 모든 힘을 모아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 방법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학문적으로 북방사 연구를 심화하여서 국제학계에서 확실한 호응을 받아야하며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 동북아시아는 역사 전쟁의 시대가 되었다.
그 속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역사침탈이라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서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어리석게 대처하면 우리의 정체성의 가장 근본인 역사마저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역사침략에 대하여 단순한 감정대응보다 모두가 동참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역사연구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고구려사가 한국의 역사라는 것을 확고히 입증하는 체계적인 연구와 세계 각 국의 문자로 번역하여 세계인에게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알리는 작업을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영토를 지킨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고구려사를 굳건히 지켜야만 역사에 대하여 정성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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