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어김없이 815가 찾아왔다.
61번째 815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분단은 여전하고 북한 핵문제와 북한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남.북한과 동북아의 긴장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거기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독도 도발 야욕, 중국의 동북공정 등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이러한 때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바로 대통령 직속으로"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이하 조사위)"가 8월 18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6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공식 출범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지난 1949년 반민특위 해체로 친일파 청산 작업이 좌절된 지 57년 만에 그들이 민족을 팔아 취득한 재산이라도 환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사위는 104명의 인원으로 구성돼 을사오적과 정미7적 같은 명백한 친일파 400여명의 후손들의 재산을 조사해 그것이 친일활동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임이 명백한 것으로 판명되면 국고로 환수할 것이라 한다.
이것은 현 정부의 업적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쾌거요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훌륭한 일이다.
또한 일제 하에서 항일투쟁에 헌신한 우리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지구상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약소국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그들은 온갖 박해와 억압 속에서도 수많은 피를 흘려가며 민 족해방 투쟁을 했다.
하지만 수십 년 간의 식민 기간을 통해 항일투쟁을 쉼 없이 벌인 민족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다.
이것은 전 세계에 자랑할 일이나 이런 우리의 항일투쟁은 2차 대전 후 승전국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그 이유로 우리 민족은 전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어떠한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 위대한 항일투쟁을 우리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우리는 계속 보여온 것이다.
우리는 항일투쟁의 총수인 김구 선생과 김좌진 장군을 우리 민족의 손으로 죽게 했다.
또한 해방 후 살아남은 항일투사들과 그 후손들은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가난의 대물림으로 사회 최하층민의 삶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그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들의 후손들은 하층민들이 계층 상승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인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철저히 박탈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 하 일본에 빌붙어 민족을 팔아먹거나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 정책에 적극 협력하며 우리 민족을 박해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파들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 역대 독재정권의 비호 하에 해방 후에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했다.
항일투사를 고문한 고등계 형사는 경찰 고위직을 독점하며 또 다시 민주투사들을 고문했고 일제하 판검사들은 또 다시 대한민국의 검찰권과 사법권을 장악했다.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교육자들이 또 다시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지배해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강요했다.
한마디로 항일투쟁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친일파 재집권의 역사는 지금도 반복돼 이제는 오선화나 김완섭 같은 신친일파들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주장과 논리를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정의니 공명이니 인권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들이 제대로 존중될 수 없고, 이것들을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화에 대응할 수 있는 내적 동력 또한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
친일파들이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은 철저히 환수하고 항일투사들과 그 후손들에 대한 대우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친일파들의 죄악상과 이들이 청산되지 못한 비극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철저히 교육시키고 신친일파들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대해 나치 범죄를 부인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는 독일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모독한 다음에야 타인으로부터 모독을 받는 다는 문구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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