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사대비극의 하나인 "리어왕"의 주인공은 역시 리어왕이다.
그는 절대군주로서 권력과 행복을 그의 비극적 결함이라고 볼 수 있는 겉모습으로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허영심에 기초한 판단착오로 인해서 파멸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왕이면서도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손아귀에 있을 때 힘이 있는 것이지 인간적인 덕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권력을 마치 어린 아이에게 선물을 주듯이 딸들의 사랑을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는 세 딸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라고 주문하고 그 말의 양과 질에 따라 권력과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언명한다.
큰 딸과 둘 째 딸인 고너릴과 리건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아버지 리어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
하지만 막내 딸 코델리아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그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노라고 말하고 침묵을 고수한다.
리어는 막내딸을 가장 애지중지해서 키웠는데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귀를 즐겁게 해줄 달콤한 말을 아끼는 코델리아를 괘씸하게 여겨 약속한 선물인 권력과 땅의 상속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만다.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착오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말로 표현을 하라고 강요를 받는다.
가슴에 묻어있는 사랑의 진실은 자신만이 알 뿐 누구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연인들의 사랑을 매순간 확인하기 위해서 또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주고받는다.
그러나 수없이 주고받은 사랑의 달콤한 말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쓴 잔을 마시는 연인들이 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의 진실은 결코 혀 놀림에 있지 않다는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인간이 표현하는 표기(denotation)와 그 것이 담고 있는 표의(connotation) 사이에는 분명히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어는 말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속성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왕이란 말인가.
리어는 고너릴과 리건의 달콤한 말에 감탄하고 코델리아의 측정할 수 없는 침묵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말의 속성에 대해서 저지른 판단착오로 인해서 엄청난 대가를 받게 된다.
권력과 땅을 물려받은 두 딸은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허위적인 것이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딸은 부왕에 대한 사랑이 넘쳐 자신들이 존재 없음의 상태에 있다고 다짐했던 입장에서 역으로 부왕의 권위를 평가절하하고 희화화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들은 왕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순간 리어에 대한 태도를 완벽하게 바꾼다.
리어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행원의 숫자를 백 명에서 오십 명 그리고 이십오 명으로 수정 제안하는가 하면 결국 한명의 수행원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자신들의 말잔치로 꾸몄던 부왕에 대한 사랑과 충성은 간 곳 없고 부왕을 빈 몽으로 광야로 내쫒는 형국을 희극적으로 조성한다.
리어는 그의 파멸을 의미하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서만 자신을 배신한 두 딸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 때서야 그는 코델리아의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이란 달콤한 말잔치보다 침묵 속에 더 담겨있음을 인식한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졌던 권력과 땅을 원점에서 다시 분배한다든지 거두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권력은 나누어 줄 때는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졌지만 다시 회복하는 것은 욕망의 덩어리인 두 딸이 움켜쥐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리어는 각성의 대가로 광야 속에서의 고행을 피할 수 없다.
그는 두 딸들이 보여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괘리를 감당할 수 없어 광증에 빠지고 만다.
리어는 광야에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두 딸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어 그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준다.
결국 그의 불행한 처지를 듣고 프랑스에서 달려와 구원하고자 하는 자도 역시 그가 버렸던 딸 코델리아이다.
그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은 고너릴과 리건은 리어를 철저히 배반하고 파괴한 반면에 그에게서 아무 것도 받지도 바라지도 않은 코델리아는 마지막 까지 리어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리어의 판단착오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 그의 불행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유래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더 이상 너무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귀중한 만큼 아껴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지만 그저 미소로 말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잔잔한 침묵의 사랑이 더욱 오래 지속되고 진실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