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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에세이]햄릿은 누구인가?

박정근 (대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24일

우리가 평소에 즐기는 농담 중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가 햄릿의 대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생사의 문제를 두고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면서도 햄릿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햄릿이 극중에서 결단을 빨리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를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상징으로 치부해버린다.


현대인들의 다수가 햄릿을 이렇게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셰익스피어가 안다면 셰익스피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래도 햄릿에 대한 왜곡된 편견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면 햄릿이 단순한 명분에 사로잡혀 생사의 문제를 단순하게 처리하는 사무라이형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햄릿공연을 보면 심각한 비극이라는 선입감에 걸맞지 않게 극속에 등장하는 성적 이미지에 깜짝 놀란다.


공연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클라우디우스왕과 거투르드 왕비의 정사장면이나 클라우디우스와 오필리아가 정사를 벌이곤 한다.


성문화가 개방적인 오늘날에는 문제가 다르지만 기독교 윤리가 매우 강한 당대 사회에서 햄릿 왕이 서거한지 며칠 만에 거투르드 왕비는 자신의 시동생인 클라디우스와 결혼하고 애정표현을 하는 것은 어쩐지 심하다는 느낌을 준다.


부왕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햄릿에게는 청천벽력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와 부왕과의 애정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을 지탱해온 기독교적 가치관이 산산조각이 되어 깨지는 것을 체험한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부왕의 유령이 들려주는 부친살해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촌 클라우디우스가 권력에 눈이 어두워 모친 거투루드와 부정을 저지르고 오수에 빠진 햄릿왕을 살해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유령의 말이라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사회는 친족살해나 근친상간을 최악의 죄악으로 규정하고 금기시하였다.


이는 그 죄악으로 인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사회를 보호하고 이끌어 가야할 왕족가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심증이 갈 때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 햄릿이 그 무거운 죄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햄릿에게는 죽거나 미친 체 하는 것 밖에 탈출구가 없다.


하지만 클라우디우스와 거투루드는 자신들이 범한 죄악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얼굴에 두껍게 덮여있는 권력욕과 색욕의 마스크가 양심의 빛을 차단하여 버린다. 


햄릿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풍겨오는 부패의 냄새로 가득 찬 조국 덴마크는 커다란 감옥이요 지옥임을 깨닫는다.


지극히 무딘 도덕과 양심의 소유자인 클라우디우스는 슬픔에 빠진 햄릿에게 인간은 결국 죽는 것이 숙명이며 사자에 대한 예의는 적절하게 형식을 갖추면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니 부왕의 죽음으로 유난스럽게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살해한 고 햄릿 왕에 대한 슬픔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며, 그의 주된 관심사는 불법적으로 탈취한 권력과 애욕을 극대화시켜 즐기는데 있다.


 햄릿은 클라우디우스의 위선적 가면을 벗기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유령이 전해준 부친살해의 비밀은 자신의 상상의 결과일 수 있으며, 불확실한 증거로 삼촌을 살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친족살해의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왕과 왕비 앞에서 부친살해의 장면을 극중극으로 보여주고 그 장면을 보고 기겁하는 클라우디우스의 모습에서 그의 범죄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런 확신을 가지기 까지 복수의 행동을 지연시켜왔던 것이다.


악마적 인물인 클라우디우스가 상징하는 부패한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생사를 초월한 영웅적 희생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한 도전과 투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오필리우스와의 행복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며, 어머니의 방에 숨어서 그를 감시하는 그녀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이 사건은 오필리어스의 광증과 자살로 이어져서 더 큰 불행을 만들어낸다.


 햄릿은 클라우디우스와 거투루드의 부정과 죄악으로 파생되는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해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을 맞이해서 실존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러운 세상에서 삶을 연장하자니 견딜 수 없고,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가자니 그 것 또한 산자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는 죽느냐 사느냐의 실존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는 사즉생(死則生)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레어티스와의 결투를 조작하여 독배를 마시게 하고 칼에 독을 발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클라우디우스의 가슴을 찔러 통쾌한 복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레어티스의 칼에 찔린 그도 비극적 영웅으로서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없다.


그는 부패와 죄악으로 오염된 조국을 자신의 죽음의 피로 정화를 시켜서 후계자 포틴브라스에게 넘겨준다. 


오늘날 권력과 색욕에 눈이 어두워 부정과 죄악을 수없이 저지르는 어둠의 세계를 누가 햄릿처럼 희생양으로 자처하며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자신 앞에 바벨탑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어둠의 자식들에게는 구원의 힘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촛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조국의 구원자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지도자들이 클라우디우스의 가면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들 스스로 "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라는 실존적 질문을 매순간 던져야 할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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