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실(胎室)"이란 왕실의 왕녀(王女)나 공주, 옹주의 출산(出山)시 태(胎)를 소중히 여겨 보관하는 곳인데 귀한 항아리에 담아 태봉을 정하고 태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풍속은 고려조 이래 우리나라 전래(傳來)의 풍속 중, 왕실의 풍습이었다.
내 고향 포천에는 공인된 태실(胎室)이 세 곳이 있으며 공인된 태실은 아니더라도 전설로 전해지는 태실이 있던 태봉이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태봉등록(胎峰謄錄)", 규(奎)128932에 의하면 소흘읍 무봉이 태봉산(230m)태실이 있는데 주인공 "옹주아기씨"의 출생일은 1735년(영조11년) 9월19일이며 당시 서소흘산면 약사봉(동) 소재의 이봉우리를 낙점 후, 12월25일 시역(始役)하여 11월 26일에 안태사(安胎使)로 임명된 도승지 김시형(金始炯)의 책임아래 필역(畢役:일을 마침)내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위 무봉리 태실 외에도 금주리 태실이 있는데 만세교 동쪽 700m 지점에 솟아있는 정상에 있었던 태실이다.
전언(傳言)에 의하면 조선시대 제12대 임금인 이종의 딸로 태어난 공주의 태를 봉했다고 하나 이를 증명할 태실 표석 및 문헌이 없어 자세하지는 않다.
일제 강점기에 이미 태 항아리는 도굴되었고 그후 옹석과 개석만이 산정상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군사기지가 개설되면서 태실의 석물마저 행방을 알수 없게 되었다.
또, 주원의 태실은 창수면 주원리 군자동 중앙의 태봉산(130)에 있었던 태실이다.
태봉산으로 전언되어온 이 태실은 증명할 만한 근거나 기록은 없으나 군부대에서 정상부까지 군사진지를 공사하던 중 우연히 태 항아리가 발견되어 태봉임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군부대에서 수습하였다는 청자 빛의 태 항아리는 현재 석조물과 함께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신북면 가채리 711번지 태봉산은 경주 최씨 문중 산인데 130m의 높이로 이름만 태봉산이지 석조물이나 태실, 태항아리는 찾을 길이 없다.
40년 전, 가채리 태봉산 기슭에서 과수원 굴착공사 중 태 항아리로 추정되는 항아리가 발견되어 포천우체국에 기증되었다는데 지금도 보관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당시 태봉산은 체성회 보호림이었음)
이상 네 곳의 태실을 살펴 보았다.
원래 태실은 왕실의 공주, 옹주, 왕녀들의 태(胎)를 태 항아리에 담아 명산 봉우리에다 길일(吉日)을 택해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옛 조상님들의 풍수사상(風水思想)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재미 있다.
태실의 태 항아리나 석조물은 당시의 귀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문화재 도굴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 고향 태실도 문화재적 가치 보전(保傳)의 차원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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