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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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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들어간 지 여러 날이 되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보면
① 지하철의 계단에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들이 하나둘 철거되고 있다. ②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거나 고장으로 서 있으면 다른 이동 방법이 없다. ③ 장애인이 이용하기 용이한 저상버스가 턱없이 부족하다. ④ 장애인용 콜택시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여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다. 그 외에 기재부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예산에 의무 편성하라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이 시위가 여러 날 동안 지속되는 동안 많은 시민들이 약속 시간이나 직장에 늦는다든지 또는 전동휠체어 등이 지하철 출입문을 막아서고 있어서 탑승조차 어렵고, 심지어 TV 뉴스에는 한 시민이 “조모의 임종을 봐야 하는데 장애인들의 시위 때문에 못 가고 있다”라는 내용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의 목소리에 날을 세운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 여당이 된 당의 이준석 대표다. 그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라고 첫 게시물을 올린 후 연일 자신의 SNS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하여 30여 차례에 걸쳐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후 그의 글들을 보면 “시민 볼모”, “부조리” 등으로 규정하며 비난을 이어가면서 “억울함과 관심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이 모든 지하철을 점거해서 최대 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인가?”라며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하여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사실상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을 시켜야 한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어“여야 정치권에서 약속해도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 삼아 시위를 지속하는 것이다” “독선을 버려라.” “서울시민을 볼모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사회적으로나 정치권에서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지하철 문에 휠체어를 세워 놓고 열차 출발을 막는 방식이 지적을 많이 받더니 이제부터는 전장연이 그냥 탑승만 하고 있다”라고 하며 역설적으로 탑승 시위만 하니 지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진작 이렇게 했다면 되었을 텐데 이제야 시위 방식을 바꿨다. 이게 애초에 요구사항이었다“고 자신의 지적이 옳았음을 내세우는 듯한 모습이다.
이 대표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자리의 무게에 비해서 작금의 사태를 보는 눈이 너무 협소하고 지엽적이기 까지하다. 라는데 있다. 비판과 비난을 넘어 장애인 폄하와 일반시민과 장애인의 갈라치기, 공권력 동원과 조롱에 가까운 언행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시장이 있을 때는 말하지 않던 것들을 왜 윤석열 당선인에게 요구하느냐?”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가 이 사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말 하고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관련 요구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추락사가 일어나자 교통약자인 장애인들의 안전 이동권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설되는 지하철마다 승강기 설치를 약속하였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프랑스제 지상 버스 수입과 장애인 콜택시 도입을 시행하였다. 또한 장애인들은 고박원순 시장을 찾아가기도 하고, 관련 예산을 거부한 기획재정부장관 집 앞에서 극렬 집회도 했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선거전략에서 2030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한 것이 투표에 도움이 되었다는 신념? 때문인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기 하는 듯한 행태이다.
그것은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 때문에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지 못한다는 시민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공유했는데 그 영상은 서울교통공사의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문건에 담겨있는 ”상대방도 실정은 언제든 할 수 있다.“”사소한 미스가 여론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장애인들의 지하철 농성에서 미스를 여론전에 활용하는 영상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공개한 영상의 뒷부분에는 지하철에서 농성하는 장애인들 때문에 ”임종을 하지 못한다“는 한 승객의 안타까운 장면 뒤에 농성을 주도한 이형욱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 또한 이동 수단이 없어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시민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장면은 싹둑 잘리고, “택시 타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모습만 보여 주무로서 장애인들의 시위를 매우 부당한 것으로 몰아갔다. 이처럼 장애인과 시민을 향한 갈라치기 여론전은 과연 누구에게 유익이 될는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정말 화가 나는 것은 그의 발언을 보면 냉소를 넘어 비난, 폄훼, 조롱에 이은 장애인의 무가치성을 부각하여 인간사회에서의 불필요한 존재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젠더 갈라치기가 국민들의 양분과 공감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은 없이 연일 “볼모”“인질” 등의 표현을 통해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 발언이다. 그는 장애인들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시민들의 불편함은 아랑곳없이 시위나 일삼는 존재로 몰아가며 이 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03년 우울증을 앓던 사람이 지하철에 불을 질러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범인은 뇌졸중으로 중도 장애가 되었고 심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여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 후 장애인이 지하철에 타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으며, 장애인은 지하철을 타지 말라는 여론을 넘어 심한 경우 탑승하고 있는 지하철에서 내리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렇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사회적으로 분리, 배제되는 것을 원하는가?
이준석 대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잘못하고 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인간의 이동권은 생존과 직결된다. 어느 누구든지 생존 앞에서는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법은 투쟁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며 이런 방법이 거슬리고 불편하고 법에 어긋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먼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혹시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니 사회적약자인 장애인들의 피눈물 나는 외침이 생떼나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문제의 심각성이 깊어지자 대통령직인수위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을 만나 소통하고 애로사항을 들었다. 보다 못한 같은 당의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은 그간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대표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또한 나경원 전 의원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좌절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떼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이라 하겠는가?”라며 ”폄훼, 조롱 같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은 아니다“면서 ”이제라도 빨리 순차적으로 예산 편성해서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기계적인 답변보다 더 적극적이고 진정성 있는 답변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인식의 폭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이준석 대표가 자전거 말고 휠체어를 타고 출퇴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이준석 대표는 “저는 장애인단체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행동 방침에 대해서만 지적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난 듯한 말을 했다. 앞서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보듯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해결 방법에 접근하는 생각과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특정 단체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 땅의 5백만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절실하고 애끓는 문제이다.
나라의 국격은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처우는 놀라울 정도로 극진하다. 그들 나라에서는 지하철을 점령하고 선로에 누우며 극렬하게 투쟁이 따르는 시위는 거의 볼 수가 없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 사회는 누구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장애인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여 그들의 요구가 있기 전에 미리 장애 요소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영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버킹엄궁전이 있는 트래펄가(Trafalgar Square) 광장이다. 커다란 분수가 멋지게 솟구치고 시민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이 광장에는 여러 개의 동상과 조각석이 있는데 그중에 트래펄가 해전에서 스페인과 프랑스 함대를 무찌르고 나폴레옹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영웅 넬슨 제독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그와 대칭되는 곳에 대리석으로 된 동상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의 동상인데 그는 닉 부이치치, 레나 마리아, 이희아, 등과 같은 장애인 해표지증(海豹肢症, phocomelia)이라는 유전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으나 구족화가와 사진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앨리슨 래퍼“이다. 그는 두 팔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고아원)에서 길러졌으며 부단히 ”나의 장애는 내 인생에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라는 말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깼으며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이 되어 ”살아있는 비너스”라는 찬사를 받은 그녀가 아이를 임신한 나체의 모습이다. 육체적 한계와 여성이라는 이름의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 장애인을 나라를 구한 전설적인 영웅과 동격으로 대우하며 마주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이렇게까지는 바라지도 못하지만 이 정도는 돼어야 한 나라의 품격이 어떠하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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