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Bourdieu)는 이러한 현상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그는 학교제도가 엘리트계급의 문화를 교육내용과 평가의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애초 가정에서부터 그것에 익숙한 상류층 아이들이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아동양육시설 (보육원)들은 6.25 동란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쟁고아들이 성장하여 수요가 적어지자 차츰 장애인이나 노인등으로 사업을 전환하여 보육원 수가 줄어들다가 90년대 후반 IMF로 인하여 해체되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 보육원에 맞겨지는 아동의 수가 많아지다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학대받는 아동들의 입소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경향 중의 하나는 사회복지시설을 화장장이나 사형장, 교도소, 도축장, 공동묘지, 정신병원등과 같은 혐오시설로 보고 자기들 사는 곳 근처에는 설립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님비현상이 지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육원들도 도시의 변두리나 아예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외딴곳에 세워지기 마련이였다. 혹여, 운이 좋아서 지역이 발전하여 도심에 자리하게 된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외각으로 쫓겨가기 일수였다. 그러다 보니 보육원이 위치한 곳에는 변변한 학원도 찾기가 어렵다. 우리시설만 해도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도 1시간 정도 가야 하고, 요리나 미용, 입시학원 같은 곳은 두세 시간 가야 있으니 가고 싶어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더구나 보육원 아이들의 경우 학원비가 일정액 정도만 지급이 되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사교육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일 예로 우리시설의 한 아동은 체육교사가 꿈이었는데 입시체육학원의 위치와 비싼 비용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말았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2,500여 명이 사회로 나오는 퇴소 아동 중 2019년 보육원에서 보호종료된 아동의 대학진학률은 40% 정도 된다. 하지만 보호 종료 5년 이내 1만 2,796명을 대상으로 대학진학자를 따져보면 10.7%에 불과하여 70.4%에 달하는 일반 아동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나마 학업 중에 경제적인 어려움과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할 것 같아 졸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 25:22절에 보면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뱃속에서 야곱과 에서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인간의 경쟁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육학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습행위에 깊이 관여하고 개입하며 그들이 공부를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하는 반면, 가난하고 학력이 약한 부모들은 보통 학교에 잘 가고 있는지 정도에만 관심을 가지며, 학습방법등도 자녀들에게 맞기는 자유방임형태를 이룬다고 한다.
전자의 부모들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인맥을 통하여 끊임없이 독려하고 방법을 찾아주는 반면, 후자의 부모들은 그럴 수 있는 여력이나 인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서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자본을 축적한 부모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식들도 누리기를 바라며, 혹여 학력이 딸려서 자녀들이 이어받지 못하는 불쌍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교육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공부를 잘해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기 보다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해소 되야만 교육의 기회도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요원한 말을 적어 본다.
올해도 두 명의 아동이 보호가 종료되어 시설을 떠났다.
한 아이는 대학을 가고, 다른 한 아이는 직장을 구하려고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나조차 믿음이 덜 가는 이 말을 또 해야 한다.
“애들아, 공부 열심히 해라”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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