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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핸드폰을 통해 김범수의 “약속”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시 온다는 그날의 약속~ 그것만으로 살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는데 다시 온다고, 꼭 돌아온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만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며 기다리는 사람의 사연이 애절하다 못해 통절하게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 이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경각(驚覺)하게 한다.
약속은 지키려고 있는 것이다. 헌 데 가끔 농조의 말로 “약속은 깨려고 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 못 할 사람이다. 반면 자신에게 큰 손해가 올 것을 알면서도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존경스러운 생각이 든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피시아스라는 청년이 교수형을 받아야 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늙은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지만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한 왕은 거절했다. 만약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가는 모든 사형수들에게도 같은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기 때ㅤ문이였다. 그때 피시아스의 친구 다온이 보증을 서겠다며 나섰다. 다온은 만일 피시아스가 약속된 날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대신 교수형을 받겠다고 했다. 왕은 “너는 피시아스를 믿는냐?”라고 묻자 다온은 “폐하, 그는 저의 친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어차피 피시아스는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그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오려고 해도 그의 부모들이 그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면 다온 너는 교수형을 당할 터인데 그래도 대신 목숨을 걸고 보증을 서겠다는 말이냐?” 하자 다온은 “그는 저의 친구이고 나는 그에게 목숨으로써 우정의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폐하”하고 결연히 말하였다.
왕은 허락을 하였고 다온은 기쁜 마음으로 감옥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 피시아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온을 비웃으며, 혹은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드디어 형을 집행해야 하는 정오가 가까웠다. 다온이 교수대로 끌려 나왔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다온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시아스를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나의 친구 피시아스를 욕하지 말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라고 다온이 의연히 말하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집행관이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주먹을 쥐었다가 엄지손가락을 펴서 아래로 내렸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싸인이였다. 그때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피시아스였다. 그는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고 숨이 넘어지는 듯 헐떡거리며 도착하여 “제가 돌아왔습니다, 저를 사형시키시고 다온을 풀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을 고했다. 그때 왕이 외쳤다. “피시아스의 죄를 사면해 주노라” 그리고 아주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런 친구를 한 번 사귀어 보고 싶구나”
약속과 신뢰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반드시 지켜야 하는 황금율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소비자와 약속을 한다. 반드시 좋은 재료만 쓴다든지, A/S는 규정대로 지킨다든가, 정량만을 판매하겠다든가, 품질을 보증한다든지... 그리고, 이 약속을 어겼을 때는 신뢰를 잃고 최악의 경우 회사의 문을 닫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보았다.
십 대 후반쯤 친구들과 넷이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였다. 나와 한 친구는 식품류 등을 챙기고 다른 둘은 텐트나 취사도구 등을 준비하여 그것들은 한곳에 모아 두고 이틀 후 떠나기로 했는데 저쪽 둘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준비된 것 들을 가지고 여행을 가버렸다. 갑자기 사라진 그들 때문에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걱정도 되고 염려도 했지만, 곧 다른 친구들과 갔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분개했었던 일이 있었다. 그 후 사과한다고 찾아왔지만 나는 그들과 인연을 끊고 산다. 그중의 한 녀석은 우리 어머니와 초등학교 동창생의 아들이라 우리는 어머니들에 이어 아기 때부터 친구로 지냈고 그 일 이후로도 얼굴을 봐야 했지만 내 마음이 풀어지기는 힘들었다. 재미난 것은 30년이 흐른 후 어떤 연합회의 회장 선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와 약간의 친분이 있는 후보와 최종경쟁자 후보자의 핵심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그 사람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나를 보는 순간 잠시 얼음이 되더니 마치 죽은 자기 할아버지 만났듯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내민 손은 웃으며 잡았지만, 선거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어느새 나와 친분 있는 후보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박빙이던 선거는 내 쪽 사람이 넉넉하게 당선되었다.
사람은 언제든지 만난다. 그리고 무슨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약속, 꼭 지켜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할 때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지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가 약속을 잘 지키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좋은 사람, 좋은 사회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킨다면 그것이 좋은 사회이고 좋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일, 사회가 정의롭게 세워지는 것은 약속을 지키고, 지켜나가려고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목숨까지 걸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곧 대통령 선거가 있고, 뒤이어 지방선거가 이어진다. 듣기 좋고 달콤한 공약들이 수두룩하지만. 개중에는 참신하고 국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어떤 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지켜져지기 어려운 것도 있다. 아마도 표만 얻는다면 나중에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이렇게 허공을 때리는 약속을 남발하면 함량미달이란 말을 듣기 십상이다. 건전한 공약들은 약속만 지켜진다면 국민들 모두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고민하고 연구하고 깊이깊이 생각해서 뽑아야 한다.
부디 지키지 못한 공약(空約)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공약(公約)이 되기를 발하여 본다.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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