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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하 세월이 그래서인가. 세간에는 ‘소시오패스(sociopath)’ 공방으로 논쟁이 뜨겁다. 방송 이후에도 장외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소시오패스란 ·반사회적 인격 장애란 뜻이다. 여당 측은 “문제의 발언은 명백한 의사윤리 위반”이라고 집중 공세를 폈고, 당사자는 “대통령 후보의 정신 건강은 명백한 ‘공적 영역’”이라고 받아쳤다. 일반인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별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었다는 사실이 민감했던 모양이다.
1964년 미국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한 잡지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에 대해 “정신 상태가 대통령직 수행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변한 것이 논란이 됐다. 골드워터는 잡지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당시 잡지사 편집장은 보상금으로 7만5000달러를 지불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정신의학회는 전문의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公人)의 정신 상태에 대한 의견을 언급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했다. 전문의가 직접 진료 하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이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공인이라면 개인의 프라이버시(privacy)만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타인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에 대해선 건강 문제도 경고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duty to warn)’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의견 제시를 획일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심리학 종사자와 전문가들도 2017년 콘퍼런스(conference)를 열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직업윤리와 대통령직의 무게 사이 균형점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골드워터 규칙 대신 '경고의 의무'를 주장하는 전문가가 속속 등장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엔 ‘타라소프’ 판결이 있다. 1969년 살인범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며 "타라소프를 죽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도 의사는 환자와의 비밀 유지 의무를 들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타라소프는 결국 살해됐다. 피해자 부모는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1976년 법원은 개인의 질환이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입힐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위험을 알려주거나 상응하는 보호 조치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닌가? 2017년 미국 얘기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의과대학 교수 들은 이제 막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거명했다. 직접 진료하지도 않고 트럼프를 "병적인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라고 불렀다. 심지어 이런 주장을 담은 책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까지 냈다. 우리 눈엔 별거 아닌 윤리 위반으로도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엄격한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저자인 주디스 허먼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와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회원인 벤디 리 예일대 교수를 비롯해 이런 분석에 참여한 전문가 중 누구도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지 않았다. 윤리위에 제소돼 징계를 받지도 않았다.
반(反) 공화당 정서가 강한 미 학계 분위기가 일부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경고의 의무인 '타라소프 원칙'이 골드워터 규칙에 앞선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덕분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이라면, 가령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위험한 징후를 보인다면 골드워터 규칙을 어기고 대중에게 알리는 의무가 더 윤리적이라는 주장 말이다. 소련 비밀경찰이 반정부 인사를 마구 정신병원에 감금했던 과거처럼 정신의학이 정치에 이용당해선 안 되겠지만, 거꾸로 경보를 울려야 할 상황을 목격하고서도 입을 다무는 것 역시 비윤리적 행위라는 지적이다. 우리 모두 경각심(警覺心)을 가지고 새겨들을 잉이 아닌가.
이규임 /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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