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포천에는 효자와 열녀가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또, 맛난 술을 빚어 길손을 대접하기를 잘 하였으며 특히, 남는 잡곡이나 잔치 후, 남은 밥 그리고 난리 통의 썩은 곡식으로 술을 내려 명절을 즐기는 집도 있었다.
내 고향 포천 어느 마을 에 효자가 80을 넘긴 노부(老父)를 모시며 효자소리를 들으며 살았는데 노부모님은 막걸리를 매우 좋아하셔서 매일 조석(朝夕)으로 막걸리 한 사발씩을 부모님께 대접하는 지극한 효도를 하였다. 그런데 나라 안의 재앙이 겹쳐 가뭄과 홍수가 매 해 닥쳐 온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웠으며 내 고향 포천도 굶는 사람이 많았다. 나라에서는 금주령을 내리고 술을 빚지 못하게 하였다, 효자 김 서방은 큰 일이었다.
매일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지 않고는 사시지 못 하며 80노구에다 하루라도 막걸리를 대접하지 않으면 사랑방 문이 여닫힐 정도로 큰 호령을 내리심 때문이었다.“엑기 이 불효자 놈 막걸리는 아니 가지고 오느냐? 막걸리 갖고 와 막걸리를”효자 김 서방은 하는 수 없이 술을 담가 뒷동산 상상봉에다 술독을 묵고 익기를 기다렸다. 집에서 오백 미터나 떨어진 산꼭대기인지라 금주령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나무꾼들이 발견하고는 고을 원님께 고변을 했다.
“원님 효자 김 서방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담갔습니다.”
고을 원님은 나라에다 효자 김서방을 금주령 위반으로 고발하고 처벌할 것을 상소하였다.
파발마로 김 서방의 술 빚는 독을 나라에서 조사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로 나라 형편이 좋아져 금주령도 해제가 되었더란다, 그런데 나라에서의 조사관은 조사관의 명령을 이행하고자 효자 김 서방과 함께 도사는 김 서방네 술빚는 독이 묻힌 산꼭대기로 올라 갔다 한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아휴-나 죽네 나 죽어-우리 아버님 잡수실 술 독 안에 웬 구렁이가 있는고?”
효자 김 서방은 술빚는 독 안의 구렁이가 있는걸 보고 온 고을이 떠나갈 듯 통곡을 하였다. 조사를 나왔던 조사관이 도사(都士)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웬 구렁이가...?” 조사관은 서울로 돌아가서 임금께 본 대로 보고를 하였으며 효자 김 서방은 한의원을 하는 서주부를 찾아가서 상의를 하였다.
“효자는 효자로고...하늘이 어찌 알고 금주령이 끝나는 날, 사주(蛇酒)를 빚어 효성을 다하게 하셨을 고?”
서 주부도 임금도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 후, 효자 김 서방의 효자상을 받았으며 효자 김 서방의 아버지는 백사주(白蛇酒)를 마시고 백년을 넘게 장수하셨다한다. 어느 마을 김 서방이며 어느 댁 효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효자 김 서방의 「백사주 효도」가 전설로 전해 온다. 필지연락처 02-932-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