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뜻은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을 이루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중용에 ‘화이불류(和而不流) 화합하되 휩쓸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적인 의미로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뜻의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는 말이 있다. 부화뇌동은 우레 소리에 천지 만물이 함께 울린다는 말로, 자신의 주체적인 의견과 객관적인 기준을 도외시한 채 물질적인 이해관계 또는 남의 주장이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다.
둘 다 군주정치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개인의 의견보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화이부동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덧없는 일 일수도 있다. 오히려 부화뇌동의 가치가 더 의미 있고 더 실질적인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도 바람직한 생각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된다.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부화뇌동의 자세이다. 여기저기서 모두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집단이기주의가 갈수록 사회를 불안과 불신의 사회로 병들어 가게 한다.
화이부동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하자. 이 가르침의 핵심은 친화에 있다. 친화를 도모해야 만이 부동하게 된다. 친화를 도모함에는 이해와 양보가 필수이다. 그 속에서만이 타협이라는 생명줄을 찾게 된다. 당장의 이익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화이부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