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은 선단동이 관할하는 4개 법정동 중 하나로 선단동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며 장마가 지고 물살이 거세지면 마을에 있던 다리가 잘 뜬다고 하여 뜬다리, 동다리 또는 동교라고 불렀다.
1912년 행정 구역은 포천군 서면 동교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서면 목동리 전역과 외소 면 초동 교리 일부를 병합해 동교리로 하고 서면의 관할로 두었다. 1937년 서면이 포천면으로 개칭하여 그 관할이 되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설운동과 접하고, 남쪽은 소흘읍 송우리와 이웃한다. 서쪽은 포천시의 경계에 해당하는데, 해룡산 자락을 넘어가면 동두천시와 양주시가 나온다. 서쪽 지역은 해룡산 자락이 남북으로 길게 들어서 있는 산지이지만 동쪽 지역은 넓게 평지가 조성되다. 이런 지형 조건을 따라 산자락에서 포천천까지 평지를 따라 마을과 농경지가 넓게 들어서 있다.
동교동의 행정통은 4개이며 동교1통(원동교=동다리)은 동교동의 원촌(原村)마을이며 자연마을로 설운리와 연결해 주는 큰 다리라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포천의 주산인 왕방산·해룡산·장림산·천보산으로 이어주는 줄기의 장림산을 젖줄로 하는 마을이다.
고려때는 마흘이라고 불렸으며 소흘읍과 견주어 보면 장림산을 말모양의 산으로 보았으리라 유추된다.
또한 옛 포천현의 여덟 개의 다리, ‘동다리’, ‘솣다리’, ‘방아다리’, ‘계 다리’, ‘공 섬 다리’, ‘유성기 다리’, ‘만세 다리’, ‘요물 다리’, 즉 ‘포천 팔다리’의 하나로 포천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동교1리 경로당은 정석영 회장을 비롯해 남성회원 23명과 여성회원 26명등 총 49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랑할 것이 많은 동네다. 주변 마을이 개발로 인해 인위적인 자연환경이 변했지만 동교1리는 섬유계통의 제조업이 마을 곳곳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정서와 구성원등은 그대로이며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시골마을과 달리 현재도 가구수가 증가중에 있으며 경로당 회원 연령이 80~90대 사이의 회원수가 많으며 남·녀 회원 비율이 비슷하다. 회원중에는 최근 육군 장성으로 진급한 자녀를 둔 이충묵(81세), 임명민(76세) 회원이 부부금술을 자랑하며 현 회장인 정석영 회장은 도지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다른 마을의 자랑은 6.25전쟁 당시에도 인명피해가 없을 정도로 화합이 잘되며, 천보산에서 지내던 산신제가 입산 금지되자 마을 자체적으로 동평제를 조직하여 마을 뒤 공원에서 제를 유지·보전해 오고 있다. 이어지는 자랑은 50대의 이기성 통장이 열성적으로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를 하나로 융합하고 마을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칭송이 자자하다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만 경로당은 동교1리처럼 항상 자랑이 넘쳤으면 한다. 뭉치고, 보살피고, 보전하고, 존경하고, 아껴주고, 자랑하는 동교1리 경로당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