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리는 내촌면이 관할하는 6개 법정리 중 하나로, 수원산(709.7m) 동쪽 자락에 있다. 두메산골이면서 나무가 많아 섭파, 서파 또는 신팔(薪八) 등으로 불렀다.
1912년 행정 구역은 포천군 동촌면 신팔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팔리 일부를 명덕리에 떼어주고 내동면 소학리 일부와 가평군 상면 율길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팔리라 하고 내촌면에 편입하였다.
신팔2리는 내촌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수원산 동쪽 자락에 있다. 서쪽뿐만 아니라 마을 동쪽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왕숙천이 흐른다. 국도 47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 소학리와 가평군 상면 봉수리를 연결하며, 마을의 북부에서 국도 37호선과 접한다.
어원을 보면 섶나무에서 파생됐으며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그만큼 산골 오지였다는 말이다.
현대사에는 6·25전쟁 당시 서파 전투지(西坡戰鬪址)로 북한의 남침 당일 북한군 주력을 방어한 전투 현장이다.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는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북한군 전차 부대가 아군의 주 저항선 방어 지대 중앙을 통과하자 제9연대 장병들은 후속하는 적 도보 부대만은 격퇴할 것을 다짐하며 진지를 고수하고자 하였으나 북한군 제3사단 및 제105 전차여단과 교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분산되어 전투력을 거의 상실하고 제1대대만이 겨우 탈출하였다.
지리적으로도 화현면과 가평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국고 37번과 47번의 교차점이며 군사적 요충지로도 중요한 곳으로, 한때는 군부대에 의존한 상가로 활황을 누렸으며 경찰지서가 위치하는 등 번화가였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우며 흔한 시골 마을로 예전에는 전답이 부족하여 전업농보다는 장사와 산판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또한 마을이 해발 267고지로 하늘 아래 첫동네라 일컬으며 왕숙천과 팔당호의 한강, 한탄강의 발원지로서 물이 말고 공기가 좋다. 그만큼 겨울엔 매서운 추위도 감내하지만, 아직도 간이 상수도를 사용할 정도로 깨끗하며 경로당 회장님도 총무이자 사모님의 암 투병을 위해 이주한 케이스로 47번 국도와 인접해있지만 도로 주변 식당과 공장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