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리는 창수면이 관할하는 7개 법정리 중 하나로 마을에 다섯 갈래 길이 있었으므로 오거리, 오가리, 오가라라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금수정, 창옥병, 아름다운 강, 산, 마음씨 좋은 사람 등 다섯 가지 아름다운 것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오가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옛날 다섯 선비가 금수정에서 시를 읊으면서, 금수정을 굽이치며 흐르는 영평천 맑은 물줄기와 빼어난 주위 경관을 보고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하여 오인(五人)의 합자인 오(伍)자에 아름답다는 가(佳)자를 붙여 오가리(伍佳里)라 하였다는 유래도 전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 지역인 오가리 전역이 북한 치하에 들어갔다가 6·25 전쟁 때 실지(失地)를 회복하여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이양되었다
오가3리는 보장산(555m)의 남쪽 일대를 포함한 남쪽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영평천과 이어지는 보장천이 마을을 지나고 있다.
오가3리는 자연 마을로 옛 마을 이름은 한냉기(사천동)이라 불렸으며 국도 37호선과 87호선이 오가1.2리에서 만나며 오가3리는 오가1.2리 안쪽에 위치한다.
사천(斜川)이라는 말은 보통 진고지, 사천(斜川)에서 유래하는 말로 질구지는 일단 질과 구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질은 길다(長)의 어간 길이 구개음화를 겪은 어형이다. 구지는 고지에서 변한 것인데 고지는 곶(곶)에 접미사 이가 결합한 어형이다. 곶은 육지이건 해안이건 특정 부분이 돌출하여 길게 뻗은 곳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질구지의 본래 어형은 길곶이 된다. 길곶은 긴 형상의 곶 즉 길게 뻗친 땅이라는 의미이다.
정확한 유례가 없어 다른 지역의 방언을 통해 추측한 결과이며 실제로 보장산과 영평사격장이 위치한 불무산 사이에 좁고 길게 뻗어 나온 형상이며 마을 경로당은 87번 국도를 경계선으로 2년 전에 폐교된 보장 초등학교와 마주하고 있다.
경로당 회원은 여성회원 30명과 남성회원 16명으로 총 46명이며 최고령 회원은 94세의 서윤석 회원이다. 농사일은 주로 밭농사 위주였으나 최근 사과농사도 일부 경작하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오가3리는 미군사격장인 영평사격장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사격장 후문이 마을을 거치므로 미군 장갑차와 차량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왕래하며 사격 폭발음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가는귀 먹어 난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취재 당일은 60세인 이정직 이장의 도움으로 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취재할 수 있었으며 오가3리는 영평사격장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까지 감내하는 직접피해자이며 미군공여지 사업이 행정당국의 형평에 맞게 지원돼야 한다고 했다.
올해 4년 차 경로당 회장을 맡고 있는 홍종화 회장도 포천에서 창수면이 가장 홀대받고 있다며 창수면과 오가3리주민들에게 행정당국의 보다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