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팔리(初加八里)는 소흘읍이 관할하는 9개 법정리 중 하나로 서울에서 북쪽으로 80리가 되는 첫 동네라고 하여 초가팔리라 이름하였다.
조선시대 말 포천군 내소면 초가팔리였다. 1896년 외소면과 내소면을 병합하여 소흘면이 됨에 따라 포천군 소흘면 초가팔리가 되었다. 1996년 2월 1일 소흘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포천군 소흘읍 초가팔리가 되었다.
초가팔리 남쪽으로 산이 높게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이가팔리, 서쪽으로 송우리와 이동교리, 남쪽으로 소흘 읍내, 남동쪽으로 고모리와 접한다.
자연마을의 옛 지명으로는 이 마을에 고창 현감을 지낸 조방보의 묘가 있는데 그 규모가 커서 묘라기보다는 차라리 능과 같다고 해서 능말이라고 불렸으며 붉은덕이 마을 뒤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에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어 붉은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이 마을을 붉은 덕이(紅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음성말(음성리)은 이 마을에 살던 성천경의 7대손인 성해응이 음성 현감을 지낸일이 있는데 사람들은 ‘음성 현감이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마을 이름을 음성리라 부르게 되었다.
초가팔리는 소흘로를 기준으로 동쪽의 2리와 서쪽의 1리로 나뉘며 최근 마을을 가로질러 구리-포천 간 도로가 건설 중에 있다.
초가팔2리는 포천 벌의 가장자리이자 국립수목원이 위치한 용암산의 끝 줄기에 위치하여 논과 밭이 풍부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곡물이 풍부하여 넉넉한 살림을 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경로당 어른들의 얼굴엔 너그로움과 여유가 묻어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농업 형태는 외지인들 중심으로 하우스 농업과 포도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이점은 가까이에 있는 마을조차 아파트와 연립, 공장등으로 전통적인 마을이 상당히 훼손됐지만 초가팔2리는 마을을 축으로 전통적인 마을을 보존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농경지가 있어 아직은 도심속의 고립된 섬처럼 옛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경로당 회원은 46명으로 남성회원 17명과 여성회원 2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점은 경로당이 30여 년 전 건립되어 남·여 구분 없이 방 하나를 사용하며 8년 전 즘에 소흘로 확장으로 경로당 건물이 도로와 인접해 있다.
이해금 회장과 임응호 총무를 비롯한 회원들 모두가 농사를 지으셨으며 농부와 같은 좋은 심성을 보유한 분들로 연배에 비해 하얀피부와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초가팔2리는 마당 끝에 홀로 핀 채송화 같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며 티 내지 않고 조용히 피었다가 내년 이맘때 그 자리에 살며시 나타나 얼굴만 보여주고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