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1리는 산골짜기에 있는 배(舟) 모양의 마을이라고 하여 배울, 배골[梨谷], 배곡 또는 주곡(舟谷)이라 하였다. 또는 배꽃이 만발하는 지역이어서 이곡(梨谷)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시대 선조가 광릉에 있는 세조 능에 참배하러 가던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꽃이 피는 계절이라 배꽃이 만발하였다. 마을의 봄 경치가 아름다워 왕이 마을 이름을 물었다. 주위에서 배골[舟谷]이라 대답하니, 그보다는 배골이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고 하여 이후로 이곡(梨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북쪽에 이곡2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예전 마을 이름은 배골, 주곡이라고 불렸다. 선조의 명으로 같은 배이지만 뜻이 舟(주)에서 梨(이)로 바뀐 것이다. 기자가 보니 경로당 뒤편이 배의 돛대와 같이 중심을 잡고 주변으로 길쭉하게 배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분지 한가운데 돛대 모양과도 같은 산이 있는 듯하다 소반골이라고도 불렸으며 상당수 목수가 거주하였고 소반을 많이 생산하였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이곡1리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동네다. 경로당 회원은 모두 52명으로 이뤄져 있지만 남성회원 27명, 여성회원 25명으로 남·여 비율이 대등하며 장수마을이다. 실제로 80세 이상 회원이 12명, 70세 이상 26명, 60세 이상 11명, 준회원 3명으로 장수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유쾌한 마을이며 회원들이 아직도 포도농사와 채소밭을 손수 일구고 있다.
특히 경기도 광주 이씨 집성촌으로 원주민 가구 수 45호 중 20호가 이 씨 지만 함께하는 넓은 가슴과 따스함을 품고 있는 동네다.
가까운 이곡2리와 달리 전원주택 등 외지인이 많이 유입되었지만 상당수의 원주민이 동네를 지키고 있어 아직도 1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야유회를 다녀올 정도로 단합이 잘되며, 경로당 살림은 일반 가정집처럼 살림살이가 구비돼있으며, 취재 당일은 많은 회원이 기자를 위해 미리 경로당에 나와 계셨다.
4대째 회장인 이윤래 회장과 이봉순 부회장뿐만 아니라 1~2대 회장과 3대 회장을 비롯한 많은 회원이 마을 자랑을 하셨다. 특히 분지와 같은 넓은 동네에 전원주택과 원주민 마을, 과수원 등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어 아름다운 마을 전경을 자랑하며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정도로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지리적으로 이곡리는 생활권이 의정부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정부와 가깝고 지형조건 역시 특이하게 의정부, 포천과 달리 한강수계 일부라고 한다. 또한, 아직도 기존 지하수를 음용수로 사용할 정도로 환경 보전이 잘 돼 있다.
또한, 동네 입구에 보건소와 초등학교, 농협 등이 위치하여 불편함이 없으며 지금도 동네에 울타리가 없는 마을로 예전부터 좀도둑이 없다고 한다. 다만 포천 1번 버스가 선단동에서 무림1리까지만 운행하므로 조금 더 연장하여 축석고개 또는 의정부 일부까지 연장되는 게 주민 숙원 사업이라고 했다.
이곡1리는 넘치지도, 부족함도, 풍족하지도 않은 동네지만 마을 분 한 분 한 분이 꽃처럼 아름다운 산골짜기 진달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