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단동은 포천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법정동인 자작동과 설운동, 동교동을 담당하고 있다.
마을 뒤편 왕방산에 큰 바위가 있어 주민들이 이곳에 제단을 갖추고 제사를 지내면 신선이 내려온다고 믿어 선단(仙壇)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는 선단산 아래에 있어 선단 마을로 불렀다고 한다. 구전으로는 옛날에 일대가 바다였는데 선단산 중앙에 있는 바윗돌에 선녀들이 놀았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마을로는 늡말·능안말·묘소말·바깥말·외촌·중간말·아랫말·두릅골·모룡이말·샛말·장승거리·넘말·묘소말·모탱이말·장승거리·정자동·성황댕이 등이 있다.
교육시설로 대진대학교와 차의과대학교가 있으며, 선단동은 안보의 요충지로서 6군단 사령부, 6공병 여단, 15항 공단 등이 위치하며, 대진 테크노파크 등 산학 연구단지를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 및 교육의 중심지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선단리는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로 군대 해산 이후 울분을 금치 못한 해산 장병들은 지방 의병과 합류함으로써 의병의 역량을 배가시킨 충정이 서려 있는 동네이다.
구한말 1907년 9월 20일 이후부터 포천지역에서 의병 활동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포천을 주 무대로 의병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2월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40여 명은 포천군 서면 왕방산에 출동하여 기습 작전을 벌였다. 김연성은 성균관에서 수학한 후 양주군 지방 위원을 역임한 인물로 1907년 가을 양주 출신 황순일(黃順一)의 권유로 의병대장이 된 이후 양주와 포천을 무대 삼아 의병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처럼 선단2통은 왕방산의 강한 기운과 역사적인 충정이 서려 있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포천에서 공업화가 일찍이 진행되고 무계획적인 개발로 오래된 동네의 문화와 전통이 희미해진 느낌이다.
외형적으로 보기에 선단2통은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있는 무채색의 마을이다. 기자를 반겨주고 경로당에서 기다리는 순박함도 있지만 도시와 농촌, 공장 및 군부대가 떠오르기도 하며 1개동에 종합대학교 2개교가 위치한 다중 복합형 동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취임한 지 4년 차인 76세의 이권묵 회장과 막내인 67세의 김기숙 총무의 노력으로 40여 명의 회원들이 조용히 동네를 지켜가고 있다. 회원들의 성품이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여서 회장과 총무가 회원들을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경로당 곳곳에 남아 있으며 연로하신 여성 회원들이 식사 당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겸손한 동네이다. 예전에 농사를 지었던 분들이어서 성품이 농가적이며 유순함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단 2통은 선단동 전체의 모태이자 지역 경제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국가 안보에도 이바지하는 하는 동네이며 아직도 40여 호의 토박이들이 경로당 중심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