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들은 평균 연령 75세로 24만여명이 살아 있습니다. 이들은 평균 5명중 3명은 병마와 시달리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라서 5년 정도가 지나면 거의가 죽거나 활동도 못할 것으로 봅니다. "
우리 회원들 중 10% 정도는 그래도 자력 또는 자손들의 덕으로 살고 있으나 나머지 90%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제치하에 태어나 광복기까지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여 자의든 타의든 전쟁터에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생존권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제대하여 귀향해보니 먹을 것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시대에 먹고살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 왔으나 돈도 권세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가난의 대물림으로 자손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원망의 세월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돈도 권세도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 가닥 희망은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만이라도 얻는다면 죽은 뒤에라도 자손들로부터 그래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공덕을 칭송할 것으로 생각하여 국가유공자 증서 한 장을 죽기 전에 받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6·25참전 포천시지회 李金鍾(75.사진)지회장이 건넨‘국의의원님들께 드리는 글’의 서두 로 6·25참전용사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이 글에서 6·25 참전용사들은 정부가 전쟁을 통해 다친 자, 죽은 자 위주로 국가유공자 대우를 해왔다며 1등 공신은 죽은 자도 부상당한 자도 아니고 오직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한 살아남은 자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6·25참전용사들이 제시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초안)대로 개정된다면 국가재정이 늘어나지 않으며 명예만 국가유공자로 대우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일을 위해 이 지회장은 며칠전 지역국회의원을 방문해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법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지회장은 지난 51년 11월 22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6·25전쟁에 참가해 57사단 수도사단 헌병대에서 전역할 때까지 조국을 위해 헌신적인 복무를 했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이 회장은 군대생활을 주로 관인과 이동에서 하게 되어 전역 후에 이동면에 거주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포천에 나와 단칸방부터 시작해 오늘날 집을 마련하고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기 까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열심히 살면서 투철한 국가관을 갖고 전쟁 없는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있는 이 지회장은 1950년7월14일 오성산 전투에서 1개 연대가 전멸할 당시에 45명만의 생존자중 한 사람으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 지회장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6·25참전기념비를 제작해 영중면 양문리에 세웠다고 한다.
“이 기념비를 보면서 국가안보를 되새기는 역사의 장으로 삼기를 기대한다”며 이 지회장은 “영중면 양문리는 6·25전쟁당시 포천지역의 최초의 전적지로 6·25전쟁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부모에게 잘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후배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줄 것을 자녀들에게 교육해왔다는 이 지회장의 건강비결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적당한 음주라고 한다.
이 지회장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어 노인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있으나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어 소일거리가 없다며 소일거리와 약간의 용돈만 준다면 얼마든지 일할 노인들이 많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