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팔호 마을. 집 뒤로는 기암절벽에 한탄강이 흐르고 화적연이 가까이 보이는 오세철 풀피리 명인 집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여식이 있었다.
수년간 풀피리 연주법을 연마하고 기량과 예능 수준이 출중한 사람들에게 관계 전문가(대학교수 3인 이상)에 엄격한 심사를 거처 합격 후 이수증을 발급하는 수여식은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연주의 기량을 인정하고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이수증이라 그 어느 대학교 졸업장보다도 뜻있는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2월 14일 오전 10시 30분경 늘 풀피리 전수교육을 해오던 보유자 자택에서 열린 수여식은 그 어느 졸업식보다 엄숙하고 경건하였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보유자로 지정된 오세철 명인의 제자 세 분이 이수증을 받는 뜻깊은 날이기도 하다.
2006년 8월에 입문한 김성환씨는 올해 69세로 경기도 파주시에서 교육을 받으러 다니셨고, 2007년 12월에 입문한 현익화씨는 54세로 경기도 수원에서, 2009년 7월에 입문한 도현옥씨는 59세로 경기도 의왕시에서 풀피리라는 우리의 전통문화. 잊어져 가는 전통 향악기 풀피리를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동안 열심히 배워 왔다.
이날 이수증을 제자들에게 수여한 보유자 오세철 풀피리 명인은 1971년 중학교 1학년 때 풀피리명인 (故)田今山(전금산) 선생님을 만나 풀피리를 배우게 되었다 한다. 남들은 본인을 풀피리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들 하나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인에 기량을 더욱 높이기 위해 새벽이면 풀피리 독공을 약 40여 분 저녁에는 약 1시간 맹연습을 하는데 하루 1시간 40분간 각기 다른 여러 곡들을 연주 한다고 한다.
이곡 중에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각도 민요. 민속 기악곡(각종 민속축제에 쓰임). 청성곡(대금에 명곡) 등도 있지만 자신이 작곡한 오세철류 풀피리 산조, 오세철류 풀피리 봉장취, 오세철 작사/작곡 한탄강 아리랑도 있다.
오 명인은 자신의 막내딸인 연경 양도 풀피리가 좋아 아버님으로 부터 사사. 10년이 되도록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서야. 2006년 6월에 1호 이수증을 수여받고 나름대로 풀피리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대학교도 국악과를 진학하여 현재는 활발한 국악 활동을 하고 있다며 풀피리가 고난도의 장르이고 어려워 오늘에 이르러 2.3.4호 이수증을 수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화성시 장명 초등학교에서 2013년 8월 말까지 교장이셨던 이선재 선생님은 풀피리가 좋아 오 명인에게 입문해서 먼 길을 달려와 배운 풀피리 연주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 또 교직원들에게도 함께 할 것을 권장 해왔고, 우리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며 지금은 교직을 은퇴했지만 풀피리 보존을 위해서 힘쓰겠다고 말했다.
풀피리는 한자어로 초적(草笛) 또는 초금(草琴)이라 한다. 풀피리는 자연과 인류가 함께하고 제일 먼저 접한 악기일 것이다. 고려악(高麗樂)에는 복숭아나무껍질로 부는 ‘도피 (桃皮) 피리가 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악학궤범’(樂學軌範) 3책 7권 향부악기 도설(鄕部樂器圖說)에 초적이 소개되어 있는데,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을 말아서 입에 물고 불기도 하며, 나뭇잎을 접어서 입술에 대고 불기도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과 중종 때 궁중에 풀피리 악사를 두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선발하였으며 조선 10대 왕인 연산군이 초금(풀피리) 음악에 능하며 즐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영조 20년(갑자, 1744) 10월 4일 광명전(光明殿)에서 있었던 대왕대비 및 중궁전의 진연과 10월 7일 숭정전(崇政殿)에서 있었던 大殿 진연의 始末을 기록한 문헌인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동진연(進宴)의 대왕대비전 내연에서 주악을 담당하였던 관현맹인(管絃盲人) 13인의 이름과 담당 악기가 밝혀져 있다. 그중에 草笛(풀피리) 1인이 포함되어 있으며, 강상문(姜尙文)이라는 실명까지 기록되어 있다.
풀피리 명인 오세철 씨 본인은 그간 크고 작은 공연 및 방송 출연과 대통령이 임석한 자리에서도 공연을 몇 번하고 국제행사도 많이 한다며 오늘 이수증을 받는 제자들에게 풀피리는 중요한 우리나라 전통 향악기라며 더 이상 맥이 끊겨서는 안될 우리에 소중한 전통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한 번 더 각인시켜 주었다.
필자도 일찍 오명인 집을 방문하여 일찍 온 풀피리 전수생들과 잠깐 풀피리 연주법을 배워보았다. 풀피리는 너무 힘들고 이해가 안 되는 아무나 하는 악기가 아닌 것 같다. 풀피리는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이고 보존회는 물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존에 힘써야 맥이 끊기지 않고 계승 발전될 것이다.
↑↑ 조선 성종 24년 1493년 8월에 성현(成俔) 유자광(柳子光)․신말평(申末平) 등이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樂學軌範『악학궤범』